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인 '트윈스캔 NXT: 2050i' / 사진=ASML 홈페이지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인 '트윈스캔 NXT: 2050i' / 사진=ASML 홈페이지
EUV(극자외선·Extreme Ultra Violet)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글로벌 반도체 불황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EUV, DUV(심자외선·Deep ultraviolet) 등 ASML이 생산하는 장비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앞서고 있는 만큼 2분기에도 성장세가 예상된다.

ASML은 올 1분기 순매출 67억4600만 유로(한화 약 9조7600억원), 당기순이익 19억5600만 유로(약 2조8300억원)를 달성했다고 19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90.9% ,순이익 181.4% 증가한 것이다. 전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4.9%, 순이익은 7.1% 증가했다. 1분기 예약매출은 37억5200만 유로(약 5조4300억원)로, EUV 노광장비의 예약매출 16억 유로(약 2조3100억원)가 포함됐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ASML의 1분기 매출과 매출총이익률은 각각 67억 유로와 50.6%로 모두 전망을 웃돌았다"며 "이는 1분기 신속한 장비 설치와 조기 인수로 EUV와 DUV 매출이 예상치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삼성전자,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지만 ASML은 올해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ASML은 올 2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매출 65억~70억 유로, 매출총이익률 50%~51%로 제시했다. 올해 연매출도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자신했다.

베닝크 CEO는 "주요 고객 가운데 일부는 수요 시기를 추가로 조정하는 반면 일부 고객은 수요 변화(특히 양산 노드 DUV)를 수용하고 있다"며 "2023년에도 여전히 전반적인 수요가 ASML의 생산능력을 초과해 현재 백로그(Backlog·주문을 받고도 인도하지 못한 재고)는 389억유로(약 56조3100억원) 이상인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ASML의 호실적은 정보기술(IT) 산업이 전방위적인 부진에 빠지고 반도체 수요가 폭락한 가운데 거둔 것이어서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요한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다. EUV 장비 가격은 대당 2000억~3000억원 수준에 불과하고 연간 생산량은 50대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반도체 생산기업들은 ASML 장비를 한 대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쟁탈전을 벌일 정도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ASML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위축되면서 메모리·웨이퍼 위탁 제조 등 주요 기업들이 자본 지출을 줄이고 주문을 축소하고 있는 데다 ASML의 가장 큰 고객인 TSMC가 EUV 장비 기계 수량을 40% 축소했다는 대만 보도가 나온 상황이다.

대만 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지난 17일 TSMC가 EUV 장비 주문을 줄이고 납기를 연장해 올해 하반기부터 ASML이 실적에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TSMC는 생산 설비투자(자본 지출) 또한 320억~360억 달러에서 280억~320억 달러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