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천동설에 갇혀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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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無知에 가스라이팅
뒷세대마저 '자동바보인형'으로
한국 정치인들,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연금·의료·부동산까지
천동설로 유혹해 제 이득 챙겨
이응준 시인·소설가
뒷세대마저 '자동바보인형'으로
한국 정치인들,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연금·의료·부동산까지
천동설로 유혹해 제 이득 챙겨
이응준 시인·소설가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해주면 대개는 놀란다. 1917년 11월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은 이듬해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Pravda)』 를 통해 말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경영’이다. 유럽의 경영기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장주의 지시를 따르고, 트레일러 작업을 도입해야 한다.” 러시아 공장은 규율과 도덕이 엉망이었다. 레닌이 기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성과 창의성은 없었다. 레닌은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는 이 말로도 유명하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나쁜 노동자들이다.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혁명 전 레닌은 이상적인 경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더랬다.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통제 아래서 모든 사무직, 관리직 들이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못 받게 하는 게 사회주의 경제의 기본정신이다.” 이랬던 레닌이 산업현장에 ‘1인 전문경영 시스템’을 적용했다. 반발이 거셌지만, ‘붉은 군대 식으로’ 깔아뭉갰다.
레닌은 세습고용 민노총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러시아와 소련에서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실시된 ‘신경제정책(NEP)’은 간단히 표현하면, 확대된 ‘북한 장마당’이었다. 국가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1991년 12월 26일, 68년 11개월 26일(소련 기준) 만에 망한 게 아니라, 이미 저 때 망한 것이다. 그것을 스탈린이 거대한 폭력으로 거짓과 생명연장의 레일 위에 올려놓았고 서구의 수많은 ‘천동설지식인’들은 소련을 이상향처럼 추앙했다. 레닌은 이념 때문에 현실을 고뇌했지만, 스탈린은 ‘자신의 어둠’에만 봉직하며 세계를 가지고 놀았다. 신학생이자 시인이자 은행강도였던 스탈린은 혁명가로서는 레닌의 제자였지만 ‘정치꾼’으로서는 레닌보다 훨씬 유능했다. 레닌이 착해서가 아니라, 스탈린이 레닌보다 더 악해서였다. 스탈린은 현대사에서 마오쩌둥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죽인 독재자다. 1924년 레닌이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좀 달라졌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개인이건 세계건 간에 겪을 일은 겪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1848년 1월 9일 독일 출신 망명 혁명가들의 모임 ‘브뤼셀 민주주의협회’에서 연설한 「자유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에는 ‘영국 곡물법(Corn Laws)’ 얘기가 나온다. ‘양곡관리법’을 연상하며 그걸 읽는데, 뭔가 아귀가 안 맞았다. 한참 답답하다가, 문득 이유를 깨달았다. 마르크스는 공장주, 지주, 농부,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 논지를 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농민만이 농지의 주인’이다. 평소 빤히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농민은 지주의 탄압을 받는 존재’라는 무의식이 작동해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던 거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386’이구나!” 그토록 치열하게 스스로 ‘재교육’을 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농민은 언제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약자가 돼야 정의로움의 수순을 찾아가는 플롯이 맞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도록 각인(Imprinting)된 세대였다. 마르크스의 사이비 기독교적 역사도식에 변화무쌍, 변화무궁(變化無窮)한 현실을 억지로 구겨 넣는 부류였다. ‘시대’가 인간을 가스라이팅 한다. 그리고 우리는 뒷세대들을 우리와 똑같은 ‘자동바보인형’이 되게 가르치고 ‘있다.’
천동설이란 ‘편안하게 감각되는 거짓’이다. 그걸 따르면 우리는 중세 속으로 떨어진다.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의 천성(天性) 같은 무지(無知)이며 그 마약 같은 순도가 높아질수록 천동설이 된다. 소련은 망한 게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천동설독재’가 안 된다면, 천동설을 지동설과 양립이라도 시키고 싶어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처럼. 정치적으로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저 ‘좋게 들리는 악법안(惡法案)’들이 바로 천동설의 유충(幼蟲)들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 국방, 교육, 연금, 의료, 복지, 부동산 등을 천동설로 유혹해 지옥으로 끌고 가 팔아먹고는 제 이득을 챙긴다. 불편한 지동설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확실한 결과가 그리스, 베네수엘라처럼 눈앞에 딱 있는데도 대중은 당장의 촉감만으로 미래를 선택한다. 옛 소련의 시인 예프게니 예프투센코는 이렇게 썼다. “혁명은 이상주의자들이 구상하고, 미치광이들이 실현하고, 악당들이 이용한다.”
혁명 전 레닌은 이상적인 경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더랬다.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통제 아래서 모든 사무직, 관리직 들이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못 받게 하는 게 사회주의 경제의 기본정신이다.” 이랬던 레닌이 산업현장에 ‘1인 전문경영 시스템’을 적용했다. 반발이 거셌지만, ‘붉은 군대 식으로’ 깔아뭉갰다.
레닌은 세습고용 민노총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러시아와 소련에서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실시된 ‘신경제정책(NEP)’은 간단히 표현하면, 확대된 ‘북한 장마당’이었다. 국가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1991년 12월 26일, 68년 11개월 26일(소련 기준) 만에 망한 게 아니라, 이미 저 때 망한 것이다. 그것을 스탈린이 거대한 폭력으로 거짓과 생명연장의 레일 위에 올려놓았고 서구의 수많은 ‘천동설지식인’들은 소련을 이상향처럼 추앙했다. 레닌은 이념 때문에 현실을 고뇌했지만, 스탈린은 ‘자신의 어둠’에만 봉직하며 세계를 가지고 놀았다. 신학생이자 시인이자 은행강도였던 스탈린은 혁명가로서는 레닌의 제자였지만 ‘정치꾼’으로서는 레닌보다 훨씬 유능했다. 레닌이 착해서가 아니라, 스탈린이 레닌보다 더 악해서였다. 스탈린은 현대사에서 마오쩌둥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죽인 독재자다. 1924년 레닌이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좀 달라졌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개인이건 세계건 간에 겪을 일은 겪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1848년 1월 9일 독일 출신 망명 혁명가들의 모임 ‘브뤼셀 민주주의협회’에서 연설한 「자유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에는 ‘영국 곡물법(Corn Laws)’ 얘기가 나온다. ‘양곡관리법’을 연상하며 그걸 읽는데, 뭔가 아귀가 안 맞았다. 한참 답답하다가, 문득 이유를 깨달았다. 마르크스는 공장주, 지주, 농부,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 논지를 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농민만이 농지의 주인’이다. 평소 빤히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농민은 지주의 탄압을 받는 존재’라는 무의식이 작동해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던 거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386’이구나!” 그토록 치열하게 스스로 ‘재교육’을 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농민은 언제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약자가 돼야 정의로움의 수순을 찾아가는 플롯이 맞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도록 각인(Imprinting)된 세대였다. 마르크스의 사이비 기독교적 역사도식에 변화무쌍, 변화무궁(變化無窮)한 현실을 억지로 구겨 넣는 부류였다. ‘시대’가 인간을 가스라이팅 한다. 그리고 우리는 뒷세대들을 우리와 똑같은 ‘자동바보인형’이 되게 가르치고 ‘있다.’
천동설이란 ‘편안하게 감각되는 거짓’이다. 그걸 따르면 우리는 중세 속으로 떨어진다.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의 천성(天性) 같은 무지(無知)이며 그 마약 같은 순도가 높아질수록 천동설이 된다. 소련은 망한 게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천동설독재’가 안 된다면, 천동설을 지동설과 양립이라도 시키고 싶어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처럼. 정치적으로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저 ‘좋게 들리는 악법안(惡法案)’들이 바로 천동설의 유충(幼蟲)들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 국방, 교육, 연금, 의료, 복지, 부동산 등을 천동설로 유혹해 지옥으로 끌고 가 팔아먹고는 제 이득을 챙긴다. 불편한 지동설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확실한 결과가 그리스, 베네수엘라처럼 눈앞에 딱 있는데도 대중은 당장의 촉감만으로 미래를 선택한다. 옛 소련의 시인 예프게니 예프투센코는 이렇게 썼다. “혁명은 이상주의자들이 구상하고, 미치광이들이 실현하고, 악당들이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