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찍히면 밤새 모자이크"…규제에 막힌 자율차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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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포함된 AI 학습 데이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
“자율주행차 개발하러 들어온 인력이 포토샵만 만지고 있으니 줄줄이 퇴사자가 나올 수밖에요.”
자율주행 스타트업 언맨드솔루션 개발진은 요새 도로 주행 과정에서 찍힌 사람 얼굴을 일일이 블러(흐리게 하는 필터) 처리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회사 관계자는 “원본 영상을 그대로 인공지능(AI) 학습 프로그램에 넣으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중국에 고객을 다 뺏길 판”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자율차, 드론 개발 업체의 AI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모호한 법 규정에 발목이 붙잡힐 위기에 처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AI 솔루션이 지속적으로 사람 얼굴을 있는 그대로 학습해야 한다. 사람의 이목구비 인식률도 기술 완성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의 상충 문제로 국내 업체는 사람 얼굴이 지워진 영상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기술 경쟁력은 물론 실제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돌아다닐 때 안전 문제에 허점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제출받은 ‘개인정보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0년 8월 이후 현재까지 허용된 실증 특례 61건 중 59%(36건)가 드론, 자율차 등 이동형 영상처리 업체였다. 도로에서 촬영한 일반인 영상은 이름 등 추가 정보와 결합하지 않는 이상 인적 사항을 특정짓기 어렵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 원본 데이터는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불완전한 영상 데이터만 학습…'자율차 AI' 고도화 차질 우려
2020년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은 ‘적법한 수집 절차’와 ‘목적에 부합하는 개인정보 사용’을 대원칙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인공지능(AI)의 원본 데이터 학습 행위는 ‘목적성’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합법 기준이 달라진다는 평가다. 여기에 연구 목적의 데이터 활용에선 사람 얼굴을 지우는 비식별화 조치까지 취해야 한다는 규정이 산업계 현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자율주행, 드론, 배달로봇 업체들이 처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원본 데이터 영상에서 사람 얼굴을 지우는 이유다.
업계는 자율주행차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식별화 조치 규정의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자율차 업체 연구원은 “비식별화에 드는 비용 부담보다 업계가 더 걱정하는 건 AI 성능”이라고 말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지워진 사람 이미지를 토대로 불완전한 학습을 한 자율주행차와 배달 로봇이 도로에서 인명 사고를 낼 경우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2025년 운전자 개입이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4) 버스·택시 출시를, 2027년 레벨4 승용차 상용화를 목표로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 선점을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모호한 규제에 가로막혀 기술 개발 타이밍을 놓치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허용하고, 데이터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사업자에 책임을 묻는 ‘네거티브 규제’를 택하고 있다. 법에 따른 책임만 지면 원본 데이터 활용은 자유롭다.
비식별화 조치 규정을 손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연계돼 있다.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 오·남용 가능성을 문제 삼아 도로 주행 원본 영상을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궁극적으론 법원에 가서 판단될 문제”라며 “정보 수집 목적인 주행을 위해 AI 학습이 필요하다고 해도 민감 정보인 사람 얼굴 활용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게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는 현재 ‘데이터 안심 구역’이나 자율주행 특구 확대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데이터 관리에 안전조치를 한 업체만 제한된 공간에서 영상 원본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암호화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원본 데이터엔 컴퓨터와 같은 기계만 접근하도록 암호를 걸고, 사람에겐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관련법을 발의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연구 목적 데이터는 보관 기간 등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자율주행 스타트업 언맨드솔루션 개발진은 요새 도로 주행 과정에서 찍힌 사람 얼굴을 일일이 블러(흐리게 하는 필터) 처리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회사 관계자는 “원본 영상을 그대로 인공지능(AI) 학습 프로그램에 넣으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중국에 고객을 다 뺏길 판”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자율차, 드론 개발 업체의 AI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모호한 법 규정에 발목이 붙잡힐 위기에 처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AI 솔루션이 지속적으로 사람 얼굴을 있는 그대로 학습해야 한다. 사람의 이목구비 인식률도 기술 완성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의 상충 문제로 국내 업체는 사람 얼굴이 지워진 영상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기술 경쟁력은 물론 실제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돌아다닐 때 안전 문제에 허점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제출받은 ‘개인정보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0년 8월 이후 현재까지 허용된 실증 특례 61건 중 59%(36건)가 드론, 자율차 등 이동형 영상처리 업체였다. 도로에서 촬영한 일반인 영상은 이름 등 추가 정보와 결합하지 않는 이상 인적 사항을 특정짓기 어렵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 원본 데이터는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불완전한 영상 데이터만 학습…'자율차 AI' 고도화 차질 우려
자율차·드론·배달로봇 등 눈·코·입 지워진 이미지 습득
2020년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은 ‘적법한 수집 절차’와 ‘목적에 부합하는 개인정보 사용’을 대원칙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인공지능(AI)의 원본 데이터 학습 행위는 ‘목적성’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합법 기준이 달라진다는 평가다. 여기에 연구 목적의 데이터 활용에선 사람 얼굴을 지우는 비식별화 조치까지 취해야 한다는 규정이 산업계 현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자율주행, 드론, 배달로봇 업체들이 처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원본 데이터 영상에서 사람 얼굴을 지우는 이유다.업계는 자율주행차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식별화 조치 규정의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자율차 업체 연구원은 “비식별화에 드는 비용 부담보다 업계가 더 걱정하는 건 AI 성능”이라고 말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지워진 사람 이미지를 토대로 불완전한 학습을 한 자율주행차와 배달 로봇이 도로에서 인명 사고를 낼 경우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2025년 운전자 개입이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4) 버스·택시 출시를, 2027년 레벨4 승용차 상용화를 목표로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 선점을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모호한 규제에 가로막혀 기술 개발 타이밍을 놓치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허용하고, 데이터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사업자에 책임을 묻는 ‘네거티브 규제’를 택하고 있다. 법에 따른 책임만 지면 원본 데이터 활용은 자유롭다.
비식별화 조치 규정을 손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연계돼 있다.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 오·남용 가능성을 문제 삼아 도로 주행 원본 영상을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궁극적으론 법원에 가서 판단될 문제”라며 “정보 수집 목적인 주행을 위해 AI 학습이 필요하다고 해도 민감 정보인 사람 얼굴 활용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게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는 현재 ‘데이터 안심 구역’이나 자율주행 특구 확대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데이터 관리에 안전조치를 한 업체만 제한된 공간에서 영상 원본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암호화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원본 데이터엔 컴퓨터와 같은 기계만 접근하도록 암호를 걸고, 사람에겐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관련법을 발의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연구 목적 데이터는 보관 기간 등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