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2022 화제의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정확히 6개월 14시간 후 에베레스트 정도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때리고,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멸종하게 될 이른바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앞둔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첨단과학의 시대답게 대멸종의 원인과 시기를 아주 정확히 예측하죠. 주인공이 설정해 놓은 다이어트 앱의 요란한 알람과 동시에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는 엔딩장면은 과학적 예측의 정확성을 보여줍니다. 마치 알고도 당하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 것처럼 말입니다.

ESG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글로벌 OTT 회사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트리고자 <돈 룩 업>이란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또 이런 선한 취지에 동참하기 위해 메릴 스트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티모시 살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트 블란쳇 등 역대급의 화려한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명연기를 통해 하나같이 한심한 캐릭터를 소화해 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쩜 정상(?)인 인간은 하나도 없을까?’ 진심 생각하게 하죠.
참을 수 없는 진실의 가벼움에 대해 - 영화 ‘돈 룩 업’
마침내 지구를 끝장 낼 혜성이 사람들의 눈앞에 등장했는데도 사람들은 애써 진실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돈 룩 업!’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 그렇게 쳐다보지 않으면, 그렇게 무시하면 이미 당도한 위기가 저절로 물러나기라도 하는 걸까요? 영화는 한때 우리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명백한 사실의 객관성을 과장이라며 조롱합니다. 똑같은 혜성과 지구의 충돌이란 소재를 다룬 영화, <딥 임팩트>(1998년) 주인공들의 진정성과는 영 딴판이지요.

한 세대쯤 지나니 사람들이 죄다 변한 것일까요?

포스트 트루스! 지금을 ‘탈진실의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서로 정반대로 말하는 주장들이 마치 나름의 정당성을 가진 냥 격하게 충돌하죠. 고만고만해 보이는 주장들 중 도대체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런 상황을 영화 <돈 룩 업>은 대놓고 노출합니다.

과학의 힘으로 어쩌면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줄 수도 있는 해법을 하늘로 쏘아 올리지만, 결국은 또 다른 과학의 힘, 즉 충돌할 혜성에 값비싼 광물질들이 ‘인류를 위해 더 유용’(솔직히는 정권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하다는 소수의 의사결정으로 철회되고 맙니다. 근거논리는 더 솔깃하죠. 그 혜성을 잘게 쪼개 지구로 끌어 내리면, 일부 지역의 피해는 감수(?)하고 막대한 자원과 무엇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넘쳐날 거라고요.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의사 결정은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시민들이 진실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반면 그런 민주주의의 함정은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 때 드러납니다. <돈 룩 업>에 나오는 (일부)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지 말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도 자신들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다수결주의의 함정은 한 표라도 더 많으면 전부를 먹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한 표를 향한 전쟁이 격화될수록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들이 차고 넘치게 되죠.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사람들은 솔깃한 것,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만 같은 것들을 선택하게 되거든요.

‘악의 평범성’을 말한 한나 아렌트(H. Arendt, 1906~1975)는 인간 삶을 세 가지 활동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한 노동, 다른 하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창조적인 활동, 그리고 공동체적 삶을 위한 활동입니다. 아렌트는 그 중 공동체적 삶을 위한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시민의 정치 활동일 것입니다.

<돈 룩 업>의 시민들은 어떨까요?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저 지켜만 볼 뿐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지 말라고’ 외치는 일부 극렬분자의 이야기가 더 솔깃하기도 하죠. 한 없이 가벼워진 저널리즘의 한 가운데서 피를 토하며 진실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맘에 걸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이들도 있긴 하죠. 하지만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마침내 종말의 알람이 울립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렌트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은 바로 ‘진정성 있는 사유’라고 했는데요. 평범해 보이는 시민들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악을 행하게 되는 이유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무심한 듯 그 장면을 시청할 수 있는 담대함은 바로 무사유, 즉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생각은 아예 안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지구의 종말을 마치 SNL의 한 장면처럼 만들고자 하는 한 없이 가벼운 저널리즘이 곧 그런 의지의 반영이죠.

영화 <돈 룩 업>은 이렇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지구 온난화나 기후재앙과 같은 종말의 시간이 얼마쯤 남았을까요? 인류가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생활을 계속해 간다면 말이죠. 한쪽에서는 시간이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 객관적 사실을 보라고요. 또 다른 쪽에서도 소리 높여 외칩니다. 기후위기는 과장된 음모라고.

자, 이제 우리 시민이 의사결정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어차피 누구 말이 옳은지 잘 모르겠으니, 종말의 알람이 울릴 때까지 믿고 싶은 대로, 아니 내가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쪽의 이야기를 믿어버릴까요. 복잡하게 따지고 생각하고 그러지 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