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시간) 막을 올린 취리히클래식(총상금 860만달러)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유일한 팀매치 대회다. 2인1조로 짝을 이뤄 순위를 가리기에 경기 내용만큼이나 톱랭커들 간의 친분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전년도 우승자인 잰더 쇼플리(30)와 패트릭 캔틀레이(31·이상 미국)가 다시 한번 손을 잡고 우승 사냥에 나선 가운데 동생 앨릭스(24)와 형제팀을 이룬 매슈 피츠패트릭(29·이상 잉글랜드), 맥스 호마(33)와 콜린 모리카와(27·이상 미국) 조합도 눈길을 끌었다.

가장 의외의 조합으로 눈길을 끈 조는 임성재(25)와 키스 미첼(31·미국)이다. 특별한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선수는 이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애번데일의 TPC 루이지애나(파72)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10언더파 62타를 합작하며 ‘환상의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다. 11언더파 61타를 친 윈덤 클라크-보 호슬러, 션 오헤어-브랜던 매튜스(이상 미국) 조에 1타 뒤진 공동 3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들의 인연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골프위크에 따르면 이들은 그해 혼다클래식 3라운드에서 같은 조로 경기했다. 미첼은 “당시 임성재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등 멋진 태도를 보여줬다”며 “그래서 농담 삼아 취리히오픈에서 함께 경기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제안이 성사되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그해에 임성재는 이미 김민휘(31)와 함께 출전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지난 2년간은 각자 다른 선수와 출전했다. 미첼이 임성재로부터 올해 대회 관련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미첼은 “세계랭킹 18위의 슈퍼스타와 경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회를 앞두고 PGA투어는 임성재와 미첼 조를 파워랭킹 4위에 올렸다.

‘아이언맨’ 임성재는 쇼트 게임의 대가다. 반면 미첼은 PGA투어에서 드라이버를 가장 잘 다루는 선수다. 비거리와 정확도를 종합평가한 드라이빙 항목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이 둘의 시너지는 완벽했다. 두 선수가 각자의 공으로 경기해 더 좋은 성적을 팀 점수로 삼는 포볼(베스트 볼)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경기에서 임성재는 전반에만 버디 4개를 쏟아내는 등 초반에 기세를 잡았다. 미첼은 특유의 장타로 7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아내며 순위를 한번 더 끌어올렸다.

개인적인 친분도 한층 더 깊어졌다.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미첼은 “나는 임성재를 돕는 역할을 했다. 그는 우리 팀의 캡틴인데 한국어로는 ‘주장(jujang)’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 조지아주립대 출신인 미첼은 임성재에게 미국 대학 풋볼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미첼은 “조지아주에 살고 있는 임성재는 이제 조지아주립대 풋볼팀 ‘조지아 불독스’의 팬”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2·4라운드는 두 선수가 하나의 공을 번갈아 치는 포섬 방식으로 열린다. 개인의 기량과 함께 두 선수의 시너지가 필수다. 임성재는 “내일 아마 미첼이 홀수를 쳐서 제가 아이언 샷을 더 많이 치게 될 것 같다”며 “거리 조절을 잘해서 미첼이 편안한 위치에서 퍼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시우(28)·김주형(21)은 이번 대회에서 팀으로 뭉쳤다. 이들은 6언더파 66타를 합작해 공동 43위로 경기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