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석부작 한 점과 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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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최선 다하는 직장인 닮아
'주 69시간 논란'에 유감
일은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자기계발 기회이기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 향해 가야
김진원 IT과학부 기자
![[토요칼럼] 석부작 한 점과 일의 의미](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564060.1.jpg)
사회생활을 한 지 10년여가 돼 가는 지금에서야 석부작이 눈에 밟힌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더욱 생각난다. 우리 모습 같아서다.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이따금 점심을 거르기도 한다. 목덜미는 뻐근하다. 오랜 시간 뚫어져라 모니터를 본다. 눈은 침침해진다. 피곤한 다리를 끌고 집에 간다. 가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해본다. 주임원사의 석부작은 청년들이 사회에 어떻게든 뿌리 내려 잘 살아 보라는 격려 아니었을까.
![[토요칼럼] 석부작 한 점과 일의 의미](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AA.33235201.1.jpg)
일종의 ‘양질 전환 법칙’을 간접 경험하는 사례도 많다.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도 그렇다. 매일 새벽 연습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 그렇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는 모두 그냥 한다. 팀에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발표용 장표를 만든다. 재판일이 잡힌 변호사는 서면을 쓴다. 회계사는 정기감사를 위해 계산기를 두드린다. 공장 직원은 납품 물량에 맞춰 설비를 돌린다. 마감을 앞둔 기자는 기계적으로 지면을 채운다. 1주일 넘게 걸려 꾹 채운 10장짜리 글에 빨간펜이 그어지면 두 번째 글을 쓴다.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다음 글을 쓴다. 그렇게 모두 작은 뿌리 1㎜를 뻗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등바등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냐고. 산업화 시대 기성세대의 논리 아니냐고. 당연히 퇴근 시간 친구들과 생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 꽃이 피면 사랑하는 사람과 훌쩍 떠나고 싶다. 마음 한쪽에 그런 아쉬움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지금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도 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날을 위해, 어제보다 더 발전된 나 자신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간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뿌리를 뻗고, 천천히 줄기를 올려, 언젠가 피울 꽃을 기다린다.
난초 화분을 가득 실은 화물차는 종종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빌딩 숲을 누빈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가득한 테헤란로와 판교까지 이어진다. 화물차 안에는 승진을 축하하는 난도 있고, 창업과 펀드 투자 유치로 새 출발을 응원하는 난도 섞여 있다. 퇴임을 기념하는 난도 있다. 청춘의 결의를 담은 용기 있는 출발이나 큰 허물 없이 긴 여정을 마친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세상에 뿌리를 뻗어가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마음을 담아 작은 석부작 한 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