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 관세청장 "자국 우선주의로 비관세 장벽 높아져…관세당국 공조 절실"
“세계 각국에서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비관세 장벽이 높아지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애로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관세당국 간 다국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윤태식 관세청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기업이 겪는 통관 애로의 80% 이상이 원산지 관련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오는 26~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세계관세청장회의(글로벌 관세협력회의)’를 앞두고 지난 19일 서울 논현동 서울세관에서 윤 청장을 만났다. 이 회의는 관세청 주도로 올해 처음 열리며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75개국의 관세당국 수장이나 고위직이 참석한다. 기획재정부 시절 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치며 ‘국제금융통’으로 불린 윤 청장이 지난해 취임 후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행사다. 윤 청장은 “관세 분야 다보스포럼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번 행사 주제는 ‘글로벌 관세협력과 디지털 세관’이다. 회의에선 관세당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서울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윤 청장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각종 보조금 지급과 세액공제 제공의 기준이 원산지”라며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원산지 판정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의 애로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세계관세청장회의가 자유무역 촉진을 위한 각국의 협력을 다질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예컨대 전기차 배터리는 광물, 소재화합물, 양극재 등 원재료가 제조 단계마다 각각 다른 국가에서 생산되는 사례가 많아 원산지를 판정하기 어렵고 이 과정에서 기업 분쟁도 늘어난다. 실제 지난해 관세청에 들어온 통관 애로 건수의 82%가 원산지 문제였다고 한다.

윤 청장은 배터리 등 신기술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세계 공통의 품목분류체계(HS코드)를 만드는 것도 각국 관세청의 숙제라고 밝혔다. 국제 HS코드가 통일되지 않으면 기업의 수출제품 통관에 혼선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윤 청장은 “양자회담으로 하나씩 풀어가기보다는 세계 여러 국가가 모여 협력을 다짐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회의의 또 다른 키워드는 ‘마약과의 전쟁’이다. 윤 청장은 “국내에서 소비·유통되는 마약류 대부분이 여행객이나 국제우편 등을 통해 외국에서 밀수입되고 있다”며 “지난해 적발한 마약 밀반입 규모는 624㎏으로, 2017년(69㎏) 대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또 “마약은 한 번 뚫리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며 “아시아·태평양 관세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국경 단계에서 밀반입을 사전 차단해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회의에선 아·태 지역 관세당국의 ‘마약밀수 공동대응 선언문’이 나올 예정이다.

윤 청장은 최근 한국 수출이 계속 감소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데 대해 “중국과 반도체에 집중됐던 수출 구조의 취약성이 경제 환경 변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라며 “수출국가와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