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치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한 달여 전 정치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앞으로 정치면은 정책 기사 60%, 정무 기사 40%로 꾸미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신문 타깃 독자인 투자자와 기업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 기사로 승부해 종합지 정치면과 차별화하겠다는 포부였다.

고백하건대 지난 한 달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림짐작으로, 정치면의 60% 이상을 정무 기사로 채웠다. 능력 부족을 먼저 탓할 일이지만 핑계를 대지 않을 수 없다. 지면을 채울 이렇다 할 정책 기삿거리가 없었다.

전광훈 제일사랑교회 목사가 여당발(發) 뉴스를 과점하는 이유를 어떤 정치 평론가는 “어쨌든 공간은 채워야 하는데 다른 채울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간’이 뭘 의미하는 지는 묻지 않았다. 정치적 논의의 장(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신문 지면 혹은 방송 뉴스 분량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둘 다”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전광훈에게 공간 빼앗긴 이유

어쨌든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교육·노동개혁, 재정 정책, 자본시장 정책 등 국민의 삶, 청년 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아젠다가 치열하게 논의됐다면 일개 목회자의 설 자리가 있었을까.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등 쟁점 법안도 많은데 왜 정책 기사가 없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물론 중요하게 다뤄왔다. 그런데 이 법안들을 다루는 기사가 과연 정책 기사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영 찜찜하다. 농민을, 의료업계 종사자와 환자를, 시청자를 위한 치열한 논의의 장이 아니어서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공간을 차지하려는 거대 야당의 정치공학적 노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당의 전술은 일부 성공하는 듯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야당발 뉴스 공간을 뒤덮기 전까지….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은 “대안 정책 정당이 되겠다”며 고군분투 하고 있다. 친기업 정책에 상속세 완화 논의까지 띄우며 외연 확장에도 힘을 쓴다. 경제신문 정치면에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당은 뭘 하고 있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과제를 힘 있게 주도하지도 못하고, 이른바 ‘중도무당층’에 어필할 새로운 아젠다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전세 사기, 마약 범죄 등 이미 벌어진 이슈에 소방수 역할을 하느라 바쁠 뿐이다. “국민의힘이 용산만 쳐다보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치인의 콘텐츠가 국격 좌우

정치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정치인은 본인 부고 기사 빼고 어떤 기사라도 나오는 게 안 나오는 것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만큼 존재감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문제는 콘텐츠다. 정치인들이 어떤 콘텐츠로 공간을 채우느냐가 나라의 품격과 미래를 결정한다.

오랫동안 정치권에 터 잡은 선수들은 초임 정치부장의 ‘순진한’ 고민을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현실 정치를 한참 모른다”고 훈수를 두고 싶을 것이다.

상대를 악마화해야 내가, 우리 편이 사는 게 지금의 현실 정치다.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온라인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정쟁(政爭)만 한 소재가 없다. 어렵고 재미없는 정책 이야기가 공간을 차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게 한국 정치는 수십 년 동안 4류라는 말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