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밀려드는데…"가장 젊은 직원이 57세, 대 끊길 판"
인천 경서동 서부산업단지에 있는 주물 업체 광희. 대형 선박 엔진의 핵심 부품인 ‘실린더 라이너’를 만드는 이 업체는 요즘 조선업 호황에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내국인 중 가장 젊은 근로자의 나이는 57세. 나머지는 60~70대 고령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조영삼 광희 부회장은 “거래처에선 월 3000개의 납품을 요청하지만 1700개를 채우기도 벅차다”며 “이런 상황이 4~5년 이상 지속되면 주물 업계가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면서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년 근로자들의 유입이 끊긴 데다, 50~70대 숙련공도 점차 현장을 떠나고 있어 대가 끊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뿌리산업 고사 위기

23일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주조(주물),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도금), 열처리 등 6대 기반공정 뿌리산업 종사자 수는 2018년 55만5072명이었으나 2021년엔 48만9744명으로 줄었다.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물, 도금, 용접 등의 인력난이 특히 심각한 상태다.

천안에서 엔진 부품을 만드는 삼천리금속은 50여 명의 내국인 근로자가 모두 60대 이상이다. 최고령자는 75세에 이른다. 조현익 삼천리금속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퇴직하겠다는 근로자를 설득해 계속 일하도록 요청하는, 사실상 ‘종신고용’ 형태로 운영하는 실정”이라며 “공장의 캐퍼가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 된 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선박 부품을 만드는 한 주물업체 사장은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납기를 맞추기가 빠듯한데 주 52시간제까지 적용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정부 규제를 비판했다.

안산에 있는 도금산업 단지에서도 작년 하반기 알루미늄 및 아연 도금업체 두 곳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근로자조차 구하기 어려워지면서다. 1986년 주물업종 특화단지로 조성된 인천 서부산업단지는 한때 42개의 주물업체가 몰려 있었으나 지금은 인력난 등의 악재가 지속되면서 10개만 남은 상태다.

용접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울산의 한 용접업체 대표는 “일감은 조선쪽하고 원전쪽이 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렇게까지 인력 수급이 안됐던 적이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했는데 들어오지도 않아 불법체류자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에서 용접 인력 파견업을 하는 DHI 김진무 상무는 “경력자들이 귀하다 보니 경쟁업체에서 용접공 스카웃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청년 근로자들이 외면하면서 직업계고나 전문대학의 용접 관련 학과도 없어지는 추세다. 은종목 한국용접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자동차나 스마트폰에도 용접 기술이 필수적인데 청년들이 기피하고 있어 기술 전수가 끊길 판”이라고 우려했다.

◆“과감한 인센티브 필요”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등 뿌리기술을 활용하는 뿌리기술은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힌다. 뿌리산업계는 인력난을 해소할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설필수 반월표면처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 인력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공장 설비 자동화가 시급하다는 건 알지만 최소 몇 억원 이상의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 정부 지원이 없으면 실행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뿌리업계는 외국인 인력 활용 방안에 대한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올해 외국인 인력 쿼터가 400명으로 지난해 120명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인력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김동현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과감하게 늘리고 뿌리산업에 배정되는 근로자들이 쉽게 이직하지 못하도록 최소 2~3년 이상 지속적으로 일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경남 창원의 알루미늄 주물업계 관계자는 “외국 인력을 애써 숙련시켜도 한국에 계속 머물 수 없어 뿌리업계에 큰 손실”이라며 “이러다간 진짜 주물 주조 노하우가 끊기게 된다”고 전했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뿌리기업에 닥친 문제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안”이라며 “국내 제조기반의 영속성 유지이라는 관점에서 과감하게 뿌리기업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