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인천의 한 주물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가스 용해로를 살펴보고 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24일 인천의 한 주물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가스 용해로를 살펴보고 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인천 경서동 서부산업단지에 있는 주물 업체 광희. 대형 선박 엔진의 핵심 부품인 ‘실린더 라이너’를 제조하는 이곳은 요즘 조선업 호황 덕에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내국인 중 가장 젊은 근로자 나이는 57세. 나머지는 60~70대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다. 조영삼 광희 부회장은 “거래처에선 월 3000개의 납품을 요청하지만 1700개를 채우기도 벅차다”고 상황을 전했다.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면서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년 근로자들의 유입이 끊긴 데다 50~70대 숙련공도 점차 현장을 떠나고 있어 대가 끊기는 건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주조(주물),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도금), 열처리 등 6대 기반 공정 뿌리산업 종사자 수는 2018년 55만5072명에서 2021년엔 48만9744명으로 줄었다.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물, 도금, 용접 등의 인력난이 특히 심각하다.

충남 천안에서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삼천리금속은 50여 명의 내국인 근로자가 모두 60대 이상이다. 최고령자는 75세에 이른다. 조현익 삼천리금속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퇴직하겠다는 근로자를 설득해 계속 일하도록 요청하는 사실상 ‘종신고용’ 형태로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경기 안산에 있는 도금산업 단지에서도 작년 하반기 알루미늄 및 아연 도금업체 두 곳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1986년 주물업종 특화단지로 조성된 인천 서부산업단지는 한때 42개의 주물업체가 몰려 있었으나 지금은 인력난 등이 지속되면서 10곳만 남았다.

용접 분야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울산의 한 용접업체 대표는 “조선과 원전 쪽에서 일감이 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렇게까지 인력 수급이 안 된 적이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들어오지도 않아 불법체류자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용접 인력 파견업을 하는 DHI의 김진무 상무는 “경력자가 귀하다 보니 용접공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직업계고나 전문대의 용접 관련 학과도 없어지는 추세다. 은종목 한국용접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자동차나 스마트폰에도 용접 기술이 필수적인데 청년들이 기피하고 있어 기술 전수가 끊길 판”이라고 우려했다.

뿌리산업계는 인력난을 해소할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설필수 반월표면처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 인력을 유인하기 위해선 공장 설비 자동화가 시급하다”며 “최소 수억원 이상의 투자비가 드는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김동현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과감하게 늘리고 최소 2~3년 이상 한곳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