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적어도 일본 수준 핵역량 확보하자
북한이 2016년 내놓은 선전용 소설 ‘야전열차’에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핵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대화 내용이 빼곡하다. “핵 보검을 틀어쥐었는데 미국 따위가 감히 뺏을 수 있겠나.”(김정일), “핵 억제력만이 우리의 존엄을 지켜줄 겁니다. 미국은 조선 땅에서 전쟁이 터지면 본토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김정은)

김정은은 지금 이 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항공모함 등 무시무시한 미국의 전략무기들이 한반도로 출동하면 두더지처럼 지하 벙커에 숨기 바빴다. 김정은도 몇 년 전까지 그랬다. 최근엔 달라졌다. 미국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공격 목표로 삼은 미사일과 핵어뢰를 시험 발사하는 무모함을 과시하고 있다. 핵·미사일에 이어 군 정찰위성까지 쏜다고 한다. 보고 때리는 ‘눈’과 ‘주먹’을 다 갖추게 된다. 북한의 화룡점정은 핵보유국 선언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지난 21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고 못을 박았다. 7차 핵실험 뒤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하면서 체급을 높일 것이다. 그다음은 주한미군 철수와 핵군축 협상 요구다. 반대급부 요구 수준도 확 높아진다. 그러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는 신기루가 된다. 북한은 수가 틀리면 수시로 핵협박을 할 것이다. 게다가 핵 강국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받쳐주고 있다.

물론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무기 기획, 운용에 한국을 포함시키고, 북한의 핵공격 땐 미국이 핵보복을 한다는 것을 공동문서에 포함하는 등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을 넘어서는 한국식 핵공유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의 핵 확장억제에 대해 북한이 더 이상 겁을 먹지 않게 됐다는 것은 핵우산이 펴지기 전에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초고성능 무기를 개발한다고 하지만, 핵에 핵이 없는 대응은 한 팔을 묶고 링 위에 오르는 것과 같다. 미국이 핵우산을 믿으라고 하지만 정권에 따라, 전략적 선택에 따라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미 훈련을 전격적으로 없애버리면서 북한의 무모함을 키운데서 잘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국제 안보 상황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북한은 그 틈을 파고들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도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더라도 독자적인 북핵 대응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핵무기 독자 개발은 미국의 반대와 국제 제재 때문에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여차하면 핵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국제 제재도 피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월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져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일본은 6개월이면 (핵개발이) 된다고 하고…”라고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도 6개월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다. 핵무기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는 플루토늄 또는 95% 이상 농축된 우라늄을 활용해 제조한다. 재처리 기술은 어느 정도 갖고 있으나 재처리 시설은 없다.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도 없고, 농축과 핵 기폭장치 기술력도 약하다. 한·미 원자력 협정이 문제다. 양국은 2015년 협정을 개정했으나 재처리는 인정받지 못했고,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한 건식재처리방식(파이로프로세싱) 공동 연구와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만 할 수 있도록 허용받았다. 그나마 이 모든 과정도 미국 측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반면 일본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단기간에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미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1988년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는 포괄적 사전 동의를 얻음에 따라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고, 우라늄 농축 권한도 가지게 됐다. 일본은 현재 6000기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47t을 갖고 있다. 여차하면 6개월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한 것이다. 한국도 적어도 이런 수준의 핵 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심각한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를 위해서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용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에 대한 본격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북한의 핵 보검은 핵으로만 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