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염노장'(1930년대)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나혜석, '염노장'(1930년대)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나혜석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화려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생전 나혜석이 그림을 보관하던 창고에 큰 불이 나 작품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도 한국전쟁을 겪으며 유실됐다. 현재 국내에 나혜석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고작 40여 점밖에 그치는 이유다.

그 중 하나인 '염노장'(1930년대)의 원본이 나혜석의 고향인 수원에서 베일을 벗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 소장품 상설전 '물은 별을 담는다'를 통해서다. 미술관은 그동안 작품 보존 등을 이유로 복제본을 전시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원본을 공개했다.

김민승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나혜석의 절친한 친구인 일엽스님의 아들 김태신 화백이 '이 그림을 나혜석의 작업실에서 봤다'고 한 점, 나혜석이 머물렀던 충남 예산 수덕사의 원당스님이 '당시 절에 머물던 비구니를 모델로 해서 그린 작품'이라고 한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염노장에선 나혜석의 말년 화풍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 바랜 캔버스 속에서도 거친 붓질과 독특한 색감이 빛난다. 김 학예사는 "나혜석이 당시 유행했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백남순, '한 알의 밀알'(1983)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백남순, '한 알의 밀알'(1983)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봇짐을 멘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비구니의 모습에선 나혜석의 굴곡진 생애도 엿볼 수 있다. 한때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던 '신여성'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이혼한 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여성의 이혼은 곧 죄'이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후 전국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중풍과 파킨슨병에 걸려 방랑생활을 하다가 1948년 말 무연고자 병동에서 숨졌다.

그는 이런 자신의 고된 삶을 화폭에 옮기기도 했다. 상설전 마지막 전시장에 있는 '자화상'(1928년 추정)이다. 어둡고 무거운 눈빛, 앙 다문 입술에서 나혜석의 고뇌가 느껴진다.

특이한 점은 자화상 속 나혜석의 눈길이 향하는 곳에 백남순의 '한 알의 밀알'(1983년)이 놓여있다는 것. 이중섭의 스승으로 알려져있는 화가 백남순은 나혜석이 1920년대 파리에서 지내며 사귀었던 친구다. 약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두 1세대 여성 화가가 같은 공간에 마주한 것이다.

전시는 2024년 2월 18일까지 열린다.
나혜석과 백남순의 방 전경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나혜석과 백남순의 방 전경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