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리퍼블릭은행. 사진제공: 로이터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사진제공: 로이터
'제2의 SVB'로 불렸던 퍼스트리퍼블릭이 최악의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국 은행들에 대한 파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다음 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퍼스트리퍼블릭, 1분기 예금 133조원 감소

24일(현지시간) 퍼스트리퍼블릭은 올해 1분기 예금액이 1045억달러라고 밝혔다. 전분기 대비 40% 줄었다. 1분기 예금액에는 퍼스트리퍼블릭 구제를 위해 대형 은행들이 지원한 300억달러가 포함됐다. 이를 제외하면 예금 감소율은 50%에 가깝다.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시중 자금은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초단기 금융상품인 단기금융펀드(MMF, 머니마켓펀드)가 대표적이다.

MMF란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초단기 공사채형 상품으로, 고객의 돈을 자산운용사가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되돌려준다. 펀드지만 수시 입출금이 자유롭고, 실적에 따른 확정적인 수익도 챙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MMF는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은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미국 MMF로 유입된 자금은 2860억달러, 우리돈 380조원에 달한다.

단기금융 선호 현상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MMF 순자산총액은 SVB 사태 등을 겪으며 지난 2월 211조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이달 들어 SVB 사태가 마무리되고 시중금리가 하락하며 180조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최근 들어서는 MMF 순자산총액이 다시 상승세로 전환했다. 21일 현재 MMF 순자산총액은 191조5000억원이다. 전체 펀드 중 20.5%를 차지하고 있다.

MMF 인기에는 수익률도 한몫했다. 25일 현재 주요 증권사들의 MMF국공채 주간수익률은 평균 3.6% 수준이다. 장기채 편입이 가능한 MMF신종 주간수익률은 이보다 더 높은 3% 후반대를 기록 중이다.

이는 대부분 은행들의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6개월 단리이자 중 한국은행 기준금리인 3.5%를 넘는 곳은 SH수협은행(3.65%) 뿐이다. 한 증권사 PB는 "MMF는 은행 예금 금리보다 금리가 높은데 수익까지 확정적이다 보니 고객들의 투자 선호도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금을 정리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금을 정리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국채, 금까지…안전 투자처 수요 더 늘었다

대표적인 안전 투자처인 국채도 개인 매수량이 크게 늘었다. 올해 개인의 국채 순매수액은 25일 현재 4조4228억원에 달한다. 기타금융채(2조8624억원), 회사채(2조7155억원)보다 인기가 좋다. 지난해 4월까지 개인의 국채 순매수량이 2374억원에 불과했던 점에 비교하면 무려 18배나 늘어났다.

앞으로도 국채 매수세는 꾸준히 이어질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리 인상이 정점을 통과했다는 예상 속에 채권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특히 금리 수준이 낮을 때 발행된 국고채인 '저쿠폰채권'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설명이다. 김시욱 NH투자증권 PB는 "현재 저쿠폰채권은 만기에 높은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는데, 매매차익에 대해선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절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25일 현재 국제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에 거래되며 2020년 8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인 2069달러를 넘보고 있다. 금 값은 앞으로도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달러화 약세,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등이 겹치면서다.

씨티그룹은 금값이 온스당 230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보람 KB자산운용 해외인덱스운용팀장은 "긴축 중단에 따라 달러화가 약세로 접어든다면, 금 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지며 전고점 경신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성재 기자 sh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