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폐를 쓸어내고 명을 섬기고 후금을 벌한다!”
광해군을 몰아내며 내건 말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괄의 난으로 충청도 공주로, 다시 3년 후 정묘호란엔 강화도로, 이번엔 남한산성으로 도망쳤다. 파천만 세 번째. 백성들을 달래는 사과문을 몇 번이나 썼던가.
그런데 지금은 청국의 칸 앞에서 신하라 외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황. 난 신하들 앞에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자결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청으로 끌려감을 면한다 해도 이런 날 백성들이 인정할까? 두렵고 부끄럽다. 하지만 살고 싶다!
무심히 겨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 청나라 기병이 한양에 들이닥쳤다. 바람 소리가 귓바퀴를 돌아나가고 눈이 흩날리는 날이었다.
조선의 신하 최명길이 홀로 이들을 막아섰고 강화도로 들어가려던 인조는 급히 남한산성으로 어가를 돌렸다. 적의 선봉대를 마주하고 명길은 정묘호란(1627년, 인조 5년) 후 흘려보낸 10년의 시간과 중국 심양과의 거리를 생각했다.
<남한산성>은 성을 나서길 꺼리는 왕 인조, 화친을 주장하며 성을 열자는 최명길, 결사항쟁을 원하는 김상헌, 이들을 조여 오는 청군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하얀 눈으로 덮인 나무들. 맑고 파란 하늘. 성 안팎을 자유로이 오가는 새들. 하지만 병사들은 얼어붙은 성벽을 따라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나 김상헌은 조선의 신하이자 명의 신하. 목숨을 구걸할 순 없다. 조정을 구해달라는 격서가 성 밖을 나갔으니 팔도에서 군사가 달려오겠지.
저 멀리 어둠 속 검단산에서 봉화가 오르면 짚 가마니로 추위를 버티던 성안 군사들도 일어설 테고.
성을 나가자는 말로 최명길은 조정을 흔들고 있다. 살아야 한다고? 아니,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야. 구걸하는 삶이라니….
눈앞의 쉬운 길과 가벼운 삶에 흔들려선 안 돼. 오히려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나, 최명길이 대의명분을 버리고, 적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
싸우려면 국경에서 붙어야 했어. 저들이 밀고 들어온 지금은? 화친뿐이야. 명과 청 사이에서의 서툰 줄타기는 끝났고 지금은 선택의 시간이다.
난들 정도가 무엇인지 모를까. 하지만 살 길을 내야 한다. 성문을 지킬 수 없다면 열어야 한다.
근왕병들이 구하러 온다? 아니! 군사들은 훈련되지 않았고 탄약은 모자라고 지휘관의 역량은 부족하다.
조선의 지휘부는 성에 갇힌 신세다. 상대는? 풍부한 실전 경험과 치밀한 준비에 완벽한 정보전을 구사한다.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는 건 현실 인식의 초라함을 드러낼 뿐이다.
만 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할 순 없다. 난 상헌을 믿지 않아. 임금 앞에서는 충신이라 치켜세웠지만 그는 명예를 탐하는 위선자다.
마당은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싸리 빗으로 눈을 쓸어 밀어낸다. 몇 번 더 눈이 내리면 추위는 물러가리라.
논쟁은 이어졌다. 청국의 칸을 황제라 부를 것인가. 조선을 신하라 칭할 것인가, 왕이 칸을 대면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입에 올리며 조정은 시간을 끌었지만 강화도는 무너졌고 죄 없는 백성들은 도륙 당했다. 길옆 곳곳에 쌓인 해골들의 텅 빈 눈은 산성을 향해 있었다.
기다리던 근왕병들은 오는 길에 격퇴당하거나 청군의 위세에 눌려 움직이지 못했다. 승리한 전투도 있었지만 탄약, 식량부족으로 다시 물러섰다.
그 사이 청국의 칸은 삼전도에 도착해 항복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전쟁은 끝났고 쌓여 가는 말만으론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봄을 기다린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길은 임금도 사대부도 사라진 세상에서 열릴 거라고 상헌은 담담히 고백한다.
그리고 자결을 앞두고 성안 대장장이에게 자신이 돌보던 아이를 부탁하고는 절을 한다. 나루라는 이름의 아이는 청군에게 강 길을 알려줄까 두려워 그가 죽인 노인의 손녀다.
살던 자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노인은 죽었지만 손녀는 살아남았다. 나루는 상헌을 붙잡고 강이 녹으면 물고기 꺽지를 잡아주겠다고 약속한다. 이건 ‘남한산성’이 그리는 희망이다.
산성에 들어온 지 46일. 조정은 성을 나와 칸에게 무릎을 꿇었다. 성 밖은 봄의 기운으로, 땅속 생명들이 깨어나는 소리로 요란했다.
왕 일행이 강을 건너 궁에 들어서자 궁궐의 문은 닫혔고 그들은 다시 안에 갇혔다.
몇 년 뒤 명길과 상헌은 포로 신분으로 심양 감옥에서 만난다. 역사는 그들이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 오해를 풀었다고 전한다.
둘은 자신들이 닮았음을,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산성 안에 부족했던 건 시간, 식량, 무기도 아닌 새로운 생각(Idea) 이었다.
칸은 세상에 명나라만 있는 줄 아냐고 비웃음으로 일갈했지만 조선 엘리트들은 오랑캐의 야만만을 탓하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치욕의 유산이 역사에 깊게 상흔을 남긴 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