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좋은 연주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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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면 대개는 어떤 곡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 때 어디까지 답해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혹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같이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곡들은 당연히 너무 좋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2번보다는 3번을 더 선호한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무대는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곡이 가진 서늘한 광기, 다닐의 변화무쌍한 템포와 볼륨, 극적인 곡 해석이 혼연일체돼 흡사 무대 위에 두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 같았던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후 관심이 생겨 다닐 트리포노프의 ‘데스티네이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찾아 들었는데, 무심결에 틀어놓았다가 포효하는듯한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에 너무 놀라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던 적도 있었다. 질문자가 최근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아다지에토, 말러 5번을 좋아한다고 답해도 괜찮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2014년 실황 연주를 녹음한 버전이 영화에 실렸다.
2015년 도이치캄머 브레멘 내한 연주를 비롯한 몇번의 공연에서 박찬욱 감독을 목격했던 경험도 나눠봄직하다.
사실 말러로 말할 것 같으면 말러 교향곡 6번을 훨씬 자주 듣는다. 그 중에서도 안단테-스케르초 순서가 듣기에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우락부락한 오프닝과는 달리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처연하게 넘실대는 현악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가만히 오보에의 멜로디를 따라가 본다.
음악으로 ‘노래하기’보다는 ‘운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지극히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 곡은 말러의 그 어떤 교향곡보다 실황을 찾아 듣는 것이 특별하다.
곡 말미에 등장하는 운명의 타격, 일명 ‘떡메’소리 때문이다. 금속성이 없고 잔울림도 없는 건조하고 우렁찬 타격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동시에 선사하는 대목이다.
이 세번의 타격을 조심조심 세팅하고 일발장전을 위해 집중하는 퍼커션 세션을 보는 것도 실황의 재미다. ‘그 부분’이 언제 나올지 두근대며 기다리다가도, 말러 특유의 밀당하는 멜로디들을 견디기 버거워질 찰나 ‘떵!’하고 등장하는 그 순간이 좋다.
제법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왔고, 연주 실황도 꾸준히 찾아다녔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답하기가 어렵다.
수없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브람스 교향곡 4번이지만 최근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베를린슈타츠카펠레의 연주를 들으면서 생경한 부분을 발견한 걸 보면 스스로를 ‘덕후’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 전공자도 관계자도 아니다.
항상 나 스스로를 ‘변방의 머글’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300년을 버텨온 음악인 만큼 좋은 연주도, 개성있는 해석도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모두 다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같은 곡이어도 지휘자마다, 오케스트라마다, 연주자마다 표현하는 분위기와 주안점을 두는 포인트가 다르다보니 곡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만만찮게 필요하다.
게다가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 먹방처럼 ‘2배속 재생’같은 감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에 곡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숨어있는 매력을 발견하기까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길다. 참으로 시간 앞에 정직한 취미다. 요즘 워낙 큰 팬덤을 가진 한국인 연주자들이 많다. 그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음악감상의 여정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들이 존경하는 거장들, 그리고 그들에게 찬사를 바친 예술가들의 연주들도 두루 섭렵하는 듯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객석의 분위기도 부쩍 생동감이 넘친다는 걸 느낀다.
클래식 음악을 오랫동안 아껴온 ‘덕후와 머글’ 그 사이 어디쯤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은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연령대가 다양하다.
나도 20대부터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에 출근도장 찍듯 꼬박꼬박 다녔으니 그 ‘다양한 연령대’에 일조한 것 같기도 하다.
부디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새로이 입문한 애호가분들이 오랜 시간동안 좋은 음악, 훌륭한 연주회를 찾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만 즐기기에는 좋은 연주,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나 많기에.
이 때 어디까지 답해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혹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같이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곡들은 당연히 너무 좋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2번보다는 3번을 더 선호한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무대는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곡이 가진 서늘한 광기, 다닐의 변화무쌍한 템포와 볼륨, 극적인 곡 해석이 혼연일체돼 흡사 무대 위에 두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 같았던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후 관심이 생겨 다닐 트리포노프의 ‘데스티네이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찾아 들었는데, 무심결에 틀어놓았다가 포효하는듯한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에 너무 놀라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던 적도 있었다. 질문자가 최근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아다지에토, 말러 5번을 좋아한다고 답해도 괜찮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2014년 실황 연주를 녹음한 버전이 영화에 실렸다.
2015년 도이치캄머 브레멘 내한 연주를 비롯한 몇번의 공연에서 박찬욱 감독을 목격했던 경험도 나눠봄직하다.
사실 말러로 말할 것 같으면 말러 교향곡 6번을 훨씬 자주 듣는다. 그 중에서도 안단테-스케르초 순서가 듣기에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우락부락한 오프닝과는 달리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처연하게 넘실대는 현악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가만히 오보에의 멜로디를 따라가 본다.
음악으로 ‘노래하기’보다는 ‘운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지극히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 곡은 말러의 그 어떤 교향곡보다 실황을 찾아 듣는 것이 특별하다.
곡 말미에 등장하는 운명의 타격, 일명 ‘떡메’소리 때문이다. 금속성이 없고 잔울림도 없는 건조하고 우렁찬 타격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동시에 선사하는 대목이다.
이 세번의 타격을 조심조심 세팅하고 일발장전을 위해 집중하는 퍼커션 세션을 보는 것도 실황의 재미다. ‘그 부분’이 언제 나올지 두근대며 기다리다가도, 말러 특유의 밀당하는 멜로디들을 견디기 버거워질 찰나 ‘떵!’하고 등장하는 그 순간이 좋다.
제법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왔고, 연주 실황도 꾸준히 찾아다녔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답하기가 어렵다.
수없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브람스 교향곡 4번이지만 최근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베를린슈타츠카펠레의 연주를 들으면서 생경한 부분을 발견한 걸 보면 스스로를 ‘덕후’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 전공자도 관계자도 아니다.
항상 나 스스로를 ‘변방의 머글’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300년을 버텨온 음악인 만큼 좋은 연주도, 개성있는 해석도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모두 다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같은 곡이어도 지휘자마다, 오케스트라마다, 연주자마다 표현하는 분위기와 주안점을 두는 포인트가 다르다보니 곡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만만찮게 필요하다.
게다가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 먹방처럼 ‘2배속 재생’같은 감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에 곡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숨어있는 매력을 발견하기까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길다. 참으로 시간 앞에 정직한 취미다. 요즘 워낙 큰 팬덤을 가진 한국인 연주자들이 많다. 그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음악감상의 여정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들이 존경하는 거장들, 그리고 그들에게 찬사를 바친 예술가들의 연주들도 두루 섭렵하는 듯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객석의 분위기도 부쩍 생동감이 넘친다는 걸 느낀다.
클래식 음악을 오랫동안 아껴온 ‘덕후와 머글’ 그 사이 어디쯤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은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연령대가 다양하다.
나도 20대부터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에 출근도장 찍듯 꼬박꼬박 다녔으니 그 ‘다양한 연령대’에 일조한 것 같기도 하다.
부디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새로이 입문한 애호가분들이 오랜 시간동안 좋은 음악, 훌륭한 연주회를 찾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만 즐기기에는 좋은 연주,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나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