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칼럼] 강남 코인 납치사건 방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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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 투자자에게 미룬
금융·공정위·국회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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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연 칼럼] 강남 코인 납치사건 방조자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7.17149995.1.jpg)
퓨리에버는 도대체 어떤 코인일까. 이를 알기 위해 코인 시장의 증권신고서 격인 백서를 열어 보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경각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국회와 협력한다’는 사업 비전부터 그렇다. 난데없는 로봇 태권브이가 곳곳에 등장해 눈을 현혹하지만, 내용은 대학 리포트를 짜깁기한 듯 허접하기 짝이 없다. 코인 발행처와 설립자 실체는 물론 재정 상태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하다. 이런 백서를 기반으로 발행된 코인이 국내 3대 거래소 중 한 곳에 버젓이 상장돼 한때 시가총액이 2000억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분별한 상장을 통해 배를 불린 거래소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이를 방치 또는 방조한 정부 당국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사이 국내 코인 거래 참여자가 580여만 명으로 늘었지만,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정체불명의 김치코인이 상장 코인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시장은 ‘쓰레기 투기판’으로 변질했다. 그렇게 단기간에 큰돈을 벌겠다는 탐욕이 사회 문제로 확산하고, 이를 노린 사기가 판치는 무법천지 사태를 방기한 셈이다. 주무 부처로 지정된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암호화폐 사업자의 이용약관을 조사해 시정조치를 해야 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코인 관련 유사수신 등 온라인상에서 불법 정보를 차단하는 책임을 진 방송통신위원회, 관련 입법을 지원해야 할 국회 모두 직무유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EU 의회가 최근 가상자산 범위와 유형을 토큰증권, 유틸리티토큰, 전자화폐토큰 등으로 구분해 규제 수준을 달리하고, 투자자 보호 내용 등을 담은 포괄적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루나와 위믹스 등 대형 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시세 조작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하는 내용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발행 공시 규제 등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사후약방문식 처방으로는 제2, 제3으로 이어지는 코인 스캔들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