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스토어 강남. 20240418 / 사진=최혁 기자
애플스토어 강남. 20240418 / 사진=최혁 기자
애플이 기술 탈취 논란에 휩싸였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중소기업과 협력할 것처럼 접근한 뒤 인력과 기술을 빼간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모바일기기, 반도체소자,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백건의 특허 기술을 무료로 이전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IT 공룡'인 두 업체가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이 부르면, 그것은 죽음의 키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경제전문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애플이 부르면, 그것은 죽음의 키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WSJ은 이 기사에서 중소기업 임원, 변호사 등을 인용해 애플이 중소기업과 파트너십 구축을 논의하는 듯하다가 결국 인력과 기술을 모두 가져갔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2018년 혈액 산소 측정기를 만든 마시모(Masimo) 설립자 조 키아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키아니는 애플의 제안이 꿈만 같았고,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애플워치에 완벽히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측이 만난 이후 애플은 마시모의 엔지니어와 최고 의료책임자 등 직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급여도 두 배를 제안했다. 키아니는 애플이 빼간 인원이 30명에 달한다고 했다.


이후 애플은 2019년 마시모와 유사한 센서 특허를 출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혈중 산소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애플워치까지 내놨다. 키아니는 "애플이 관심을 가질 때 그것은 죽음의 키스다"라며 "처음에는 흥분하겠지만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WSJ은 "키아니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발명가, 투자자 등 2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은 애플이 중소기업 기술을 애플 제품에 적용하는 논의를 하자고 접근한 뒤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이후 비슷한 기능을 자체적으로 출시했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들이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하면 애플은 수십 건의 특허 무효 소송으로 반격했다. 한 개 특허에 대해 여러 개 소송을 제기하고 관련 없는 특허에 대해서도 소송을 내며 분쟁을 법정으로 몰고 갔다. 지식재산권 조사 회사인 파텍시아(Patexia)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특허심판위원회에 제기한 특허 무효화 소송은 애플이 가장 많다. 소송 한 건에 드는 비용은 약 50만 달러(한화 약 6억6800만원)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비용이라고 WSJ은 덧붙였다.

애플은 2013년 심박수 모니터링 기술을 보유한 발렌셀(Valencell)과 파트너 관계를 논의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애플은 여러 차례 기술 정보를 요구했고 몇 개월간 시제품도 테스트하면서 라이선스 가능성도 논의됐다. 하지만 논의는 갑자기 중단됐고 2015년 심장 모니터링 기능을 갖춘 애플워치가 출시됐다.

발렌셀은 이듬해 애플을 상대로 4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이 4개의 특허 무효화 신청을 특허심판위원회에 내며 맞대응했다. 이와 관련 없는 다른 7개의 발렌셀 특허에 대해서도 추가 무효화 신청을 제기했다. 애플과 법정 분쟁에 지친 발렌셀은 2019년 애플과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애플은 "우리는 기술을 훔치지 않고 타사의 지적 재산을 존중한다"며 "타사가 우리의 기술을 모방하고 있으며, 법정에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장을 지낸 안드레이 이안쿠는 "현재 특허 시스템은 기존 대기업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며 "이는 우연이 아니고 수십년간 누적돼 온 것"이라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사진=삼성전자

"대기업 중 中企 협력 가장 잘하는 회사 '삼성전자'"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과 모바일 기기, 스마트워치 등으로 경쟁하는 삼성전자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손잡고 특허 기술을 무료로 이전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 기술나눔에서 △모바일기기 △통신·네트워크 △반도체소자 △반도체 공정·장비 △디스플레이 △가전 △의료기기 △오디오·비디오 총 8개 기술분야에서 272건의 특허를 공개한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기술나눔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02개 기업에 959건의 특허를 무료로 이전해 대·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힘썼다. 국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나눔한 건수는 삼성전자가 가장 많다.

2020년 삼성전자로부터 오디오 신호 처리 기술을 이전받은 벨레는 대표적인 삼성전자 기술나눔의 우수 사례로 꼽힌다. 벨레는 삼성전자의 기술을 바탕으로 가구와 스피커를 결합한 블루투스 테이블 스피커를 개발해 해외에도 진출했다. 그 결과 벨레는 2020년 대비 2022년에 매출은 50%, 고용은 80%나 증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사진=삼성전자
이민우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융합정책관은 "국제 기술 패권 경쟁시대에 삼성전자의 기술나눔은 중소기업들이 기술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한 임원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대기업 중에서 중소기업 협력을 가장 잘하는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라며 "관련 자료를 내고 싶어도 삼성에서는 상생 행보를 조용히 진행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국내 대기업 여럿에 납품을 하고 있다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과거에는 삼성도 갑질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삼성처럼 대금 거래를 확실히 해주고 중소기업의 기술적인 애로 사항을 적극 해결해 주는 대기업도 없다"고 강조했다.

"中企 기술 보호하는 풍토를 못 만들면 애플 사례 늘어날 것"

국내에 삼성전자 같은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18일 공익 재단법인 경청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은 아이디어와 기술만 보고 창업에 나서는데 대기업이 협업을 이유로 기술자료를 확보하고 동일한 사업을 한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을 중소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피해기업 대표들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 방성보 키우소 대표,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  2023.4.18 / 사진=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피해기업 대표들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 방성보 키우소 대표,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 2023.4.18 / 사진=연합뉴스
당시 기자회견에는 롯데헬스케어와 분쟁 중인 알고케어, LG생활건강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프링커코리아, 농협경제지주와 분쟁 중인 키우소, 카카오헬스케어와 분쟁 중인 닥터다이어리, 신한카드와 법적 다툼 중인 팍스모네 등 5개 스타트업이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경청은 "대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갖고 중소기업과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도 중소기업 권리회복을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하는 방식은 과거 중국이 국내 업체 인력과 기술을 뺏어갈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며 "중소기업의 원천 기술을 보호하는 법과 풍토를 만들지 못하면 애플과 같은 사례, 중국으로 넘어가는 국내 기술 및 인력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