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벚나무

나무 중 제일 어여쁜 벚나무가 지금
가지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숲속 승마길 옆에 줄지어 서 있네,
부활절 맞아 하얀 옷 입은 듯이.

이제 내 칠십 인생에서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으니,
일흔 번 봄에서 스물을 빼면
고작해야 쉰 번이 남는구나.

만발한 꽃들을 바라보기엔
쉰 번의 봄도 많지 않으니
나는 숲속으로 가리라
눈꽃송이 활짝 핀 벚나무 보러.


앨프레드 E. 하우스먼(1859~1936) : 영국 시인이자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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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5분밖에 없다면 뭘 할까요?
칠십 인생에서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으니

시인 하우스먼은 세월의 단면을 잘라 인생의 봄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그것도 꽃다운 스무 살 젊은이의 관점을 통해서 말이죠.

‘내 칠십 인생에서 이제/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으리./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고작해야 쉰 번이 남는구나.’

그러면서 ‘만발한 꽃들을 바라보기에/ 쉰 번의 봄은 많은 게 아니니/ 나는 숲속으로 가리라/ 눈같이 활짝 핀 벚나무 보러’라고 노래합니다.

프랑스 명배우 장 가방이 했던 말과 비슷하군요. “생의 늦가을에 들어선 내게 아직도 경이로운 일은 그토록 많았던 슬픈 저녁들은 잊히지만, 어느 행복했던 아침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시를 오래 음미하는 동안 ‘단지 15분’이라는 서양 연극이 생각났습니다. 자기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가 주인공이지요.

이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제 학위를 받을 날만 남았죠. 앞날이 장밋빛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곧이어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지요. 시한부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망연자실했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분이 금방 지나가고, 이제 그의 인생은 10분으로 줄어들었죠. 이때 그가 누워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억만장자인 당신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시오.’

그런데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운명의 시간은 더 줄어들었지요.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지요.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지요.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보여줍니다. 사실 이 청년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지요.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우리 앞에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다시 돌아올 리 없지요.

아, 지금도 쉼 없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인 거지요. 오늘은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들립니다.

“인간은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