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매직 패스'가 새치기냐고 묻는다면
얼마 전 뇌과학자인 정재승 KAIST 교수가 TV 프로그램에서 놀이공원의 ‘매직 패스’에 대해 “돈을 더 낸 사람에게 새치기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놀이공원에서 추가 요금을 받고 일반 대기 줄보다 더 빨리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있는 이용권을 판매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정 교수는 “먼저 줄을 선 사람이 먼저 서비스받는 게 당연하다”며 “놀이공원에서 주로 줄을 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 그런 걸 보면 어떤 가치를 배우게 될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선한 단어로 포장된 당위론에는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자녀의 인성 교육이 달린 문제다. 아이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는 지식인의 당연한 말을 부정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지난해 아이와 함께 찾은 해외 한 놀이공원에서 ‘익스프레스 패스’를 구입한 걸 되돌아봤으니 말이다.
[토요칼럼] '매직 패스'가 새치기냐고 묻는다면
매직 패스는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기업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해 내놓은 차별화된 상품이다. 물류 회사가 추가 비용을 받고 배송 기간을 단축해 주는 ‘특급 배송 서비스’처럼 말이다. 돈이 많은 부유층에게만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도 아니다. 누구나 살 수 있고, 구입 여부는 개인의 상황과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매직 패스가 부도덕하다면, 논리적으로 ‘부도덕한’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성립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기 어려운 건 전제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매직 패스와 같은 우선 탑승권을 ‘새치기 권리’라고 비판했다. 샌델 교수는 “자기 차례를 줄 서서 기다리는 줄서기의 도덕을 더욱 빨리 서비스를 받으려고 가격을 지불하는 시장의 도덕으로 대체한다”며 우선 탑승권을 ‘진료 예약권 암거래’와 비교하기까지 했다. 놀이공원에서 선택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와 진료를 비정상적으로 받는 불법 행위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책에서는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줄서기 역시 규칙이지 불변의 도덕률은 아니다. 권리와 보상이 마땅히 주어져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샌델 교수가 표현한 ‘줄서기의 도덕’이 통하지 않는 곳이 응급실이다. 응급실에서는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위중한 순서대로 환자를 본다. 응급실에서 종종 의료진 폭행 사건이 벌어지는 건 ‘먼저 줄을 선 사람이 먼저 진료받아야 한다’는 경직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 나온 상품과 서비스마저 공정 시비에 쉽게 휘말리고, 거기에 대중이 호응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장의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가난한 사람이 높은 이자를 내는 건 불공정하다”는 어느 정치인의 주장도 한때 주목받았다. ‘갚을 능력’을 평가하는 신용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말인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공감했다.

공정이나 도덕이라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드러내기 힘든 우리의 원초적 불편함을 건드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놀이기구를 타려고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매직 패스를 산 사람이 일반 대기 줄을 건너뛰고 나보다 먼저 탄다면, 함께 줄 선 아이가 “아빠, 쟤는 왜 새치기해?”라고 묻는다면. ‘가격 차이’가 ‘대우 차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묻는 정 교수의 말에 “위화감을 느낄 것 같다”고 답한 출연자가 차라리 솔직하다. 정부가 지금까지 인천국제공항의 유료 패스트트랙(신속 출국 서비스)을 허용하지 않은 것도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논리였다. 세계 대부분 국제공항에 도입한 서비스를 사람들이 기분 나빠한다는 이유만으로 막아 온 것이다.

기왕에 매직 패스를 통해 아이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야 한다면 특별한 상황에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이는 특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미안할 일도 아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매직 패스를 구입해 쓴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이며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다는 걸 설명해 주겠다.

다음주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와 가기로 약속한 놀이공원에서 매직 패스는 안 살 생각이다. 예매하려다가 입장료와 맞먹는 가격에 흠칫했다. 아이가 물어본다면 그저 “너무 비싸서”라고 답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