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없는 여성 시신에 경악…'천재 화가' 집에 긴급출동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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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표현주의 대가'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20세기 초 최고의 '팜므 파탈'
알마 말러와의 광적인 사랑
집착은 광기를 낳고
그들의 '미친 사랑' 이야기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20세기 초 최고의 '팜므 파탈'
알마 말러와의 광적인 사랑
집착은 광기를 낳고
그들의 '미친 사랑' 이야기
1920년대 초 오스트리아의 한 주택 앞. 경찰관들이 문을 다급하게 쾅쾅쾅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푸석한 얼굴로 나온 집 주인. 그는 유명 화가였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이러십니까?” “목 없는 피투성이 여성의 시신이 선생님 집 앞에서 발견됐습니다.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짜증이 가득했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멍해지더니, 갑자기 기괴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터지는 광기 어린 웃음. “하하하! 좋습니다. 그러시던가요. 다만 이건 아셔야 할 겁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보세요.”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사건 현장’을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남자 말대로 시신이라고 생각했던 건 사람처럼 만든 인형이었고, 피처럼 보였던 건 와인이었습니다. 돌아서며 경찰관들은 중얼거렸습니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원….” 100년 전 벌어졌던 이 기이한 소동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거장 오스카 코코슈카. 하지만 이 에피소드보다 더 기막힌 건 뒤에 숨겨진 ‘미친 사랑 이야기’였으니,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그 이야기를 코코슈카의 대표작들과 함께 풀어 봅니다.
클림트 ‘키스’ 모델? 유럽 흔든 ‘치명적 여성’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지만, 대단한 미인이나 천재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엄청난 미인이라고 다른 사람이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천부적인 ‘어장 관리’의 재능 덕분이었지요. 알마는 상대가 멀어지면 다가왔고 다가오면 거리를 뒀습니다. 육체적인 관계에 거리낌이 없는 듯하면서도 곧잘 상대를 밀어내곤 했습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분석입니다. 수많은 남자를 찼던 그녀.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사람이 자신을 낮게 평가하거나 무례한 말을 하면 3일 동안 침대에서 흐느끼곤 했다네요. 이런 성격과 행보 탓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마에 대해 ‘괴물’ ‘방탕한 여성’ 심지어는 ‘오만하고 멍청한 지구상 최악의 인간’ ‘그녀를 아내로 맞는 건 사형선고’라고들 했습니다.
사교계 남자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던 그녀는 나이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천재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를 선택해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말러는 결혼 후에도 독신 시절의 생활 방식을 엄격하게 고수했습니다. 5분 단위로 일정을 관리했고, 함께 저녁을 먹을 때도 작곡에 대해 생각을 하느라 일절 말을 하지 않았지요.
코코슈카의 광적인 재능과 집착
코코슈카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알마가 다른 남자들과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극도로 싫어했으니까요. “내가 당신 곁에 있든 없든, 당신은 나만 봐야 해.” 알마의 집을 찾아온 방문객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모욕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죽은 전남편인 말러까지도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1912년 6월 26일 말러 교향곡 9번의 초연 전날 코코슈카는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죽었든 살았든,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일부라는 걸 견딜 수 없어!”
코코슈카의 집착과 알마의 바람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는 점차 균열이 생겼습니다. 알마는 코코슈카에게 조금씩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코코슈카도 친구들에게 “저 여자와 당장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요. 코코슈카의 어머니는 친척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그 여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1912년 알마가 임신한 일은 오히려 이들의 관계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제 알마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코코슈카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같이 살기만 하면 집착하지 않을게. 저녁에 외출하는 것도 허락해 줄게. 밤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테니….” 하지만 알마는 코코슈카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낙태를 하고 말았습니다.
3개월 후 코코슈카는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게 됐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부상에서 회복하긴 했지만, 코코슈카는 알마가 다른 남자와 새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광적인 이상 행동이 시작됐습니다. 당대 유명한 인형 제작자에게 알마의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사람 옷을 입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겁니다. 인형 제작자에게 보낸 그의 요구사항은 더욱 소름이 끼칩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실물 크기 그림을 보냈소. 아주 세심하게 현실로 만들어주시길 바라오. 머리와 목, 목에서 등까지의 라인, 배의 곡선, 목과 사지의 치수에 특별히 주의해서 만드시오. 아, 그리고 입 안에는 이빨과 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코코슈카는 하녀를 고용해 인형에게 맞춤 제작한 옷을 입히고 시중을 들게 했고, 인형을 오페라 공연이나 카페에도 데려갔습니다. 이를 소재로 그림도 많이 그렸고요. 물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욕했지요. 그럴 만합니다.
사랑은 시들고 예술만 남아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둘의 편지가 계속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희대의 ‘집착남’과 ‘어장관리녀’가 만났기 때문이었을까요? 1946년 알마는 코코슈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때 어떻게 우리가 헤어질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 그걸 본 코코슈카는 결혼 5년 차인데도 “내가 사는 데로 놀러 오라”며 알마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알마는 가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습니다. 1927년 베네치아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한마디도 없이 서로를 지나쳐간 게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코코슈카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예술은 인간 본연의 파괴적인 충동을 발산하는 가장 생산적인 통로’라는 말에 다시금 동의하게 됩니다. 그들의 광적인 사랑 덕에 우리는 인간 내면에 휘몰아치는 사랑과 열정, 광기를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집착남이 되거나, ‘괴물 어장관리녀’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서도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자료) 이 기사의 내용은 서적 오스카 코코슈카(오스카 코코슈카 지음, 김금미 옮김), Oskar Kokoschka: A Life(Frank Whitford), Malevolent Muse: The Life of Alma Mahler (Oliver Hilmes), Art in Vienna 1898~1918: Klimt, Kokoschka, Schiele and their contemporaries(Peter Vergo)와 함께 Alma Mahler Doll Made for Oskar Kokoschka by Hermine Moos(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홈페이지 설명)를 참조했습니다.
*내부 기사 시스템의 기술적 오류로 인해 4월 29일 업로드됐던 기사가 삭제되고, 5월 1일에 재업로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좋아요 및 댓글이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소중한 반응 남겨주셨던 독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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