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와 비올레타 발레리- 베르디의 가장 가슴 아픈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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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황지원의 프리마 돈나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타락한 여인’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동백꽃 여인>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것인데, 원작에 비해 훨씬 더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명칭을 오페라의 제목으로 붙인 건 다분히 작곡가 자신의 의도였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중부의 시골마을 부세토 출신으로 당시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한참이나 세련된 밀라노로 유학을 떠나 처음부터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고향 땅에서 맺어진 부인 마르게리타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낳았으나 두 아이 모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급기야는 마르게리타마저도 병으로 숨을 거둔다.
커다란 실의에 빠진 베르디는 한때 오페라 작곡가의 붓을 꺾고 귀향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오페라 <나부코>가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당대의 청년 오페라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된다.
우리에게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희대의 명곡으로 유명한 이 작품에서 베르디는 또 하나의 귀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밀라노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불리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였다.
밀라노 대귀족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우아하고 사려 깊은 오페라 스타’와 홀아비 신세의 투박한 시골 출신 청년 작곡가는 <나부코>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국은 동거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베르디는 이제 금의환향을 꿈꾼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연인 스트레포니와 함께 기세 좋게 고향 땅으로 내려왔으나, 현실은 부세토 사람들의 가혹한 냉대와 차가운 따돌림이었다.
부세토의 유지 안토니오 바레치의 딸이었던 마르게리타를 객지에서 잃고는, 세련된 밀라노의 오페라 스타이자 뭔가 어두운 풍문이 있었던 스트레포니를 데리고 온 베르디가 고향 사람들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부세토 사람들의 차갑고도 잔인한 태도에 크게 상심한 베르디는 이후 다시는 고향 땅을 찾지 않는다. 대신 그는 부세토에서 조금 떨어진 산타가타라는 작은 마을에 자기만의 소박하고도 품위 있는 저택을 지어 스트레포니와 은거하게 된다. 이 시기에 작곡된 <라 트라비아타>는 당연히 그 시대와 당대 사람들의 도덕적 이중 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비록 프랑스 파리의 밤의 여자, 즉 화류계의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당당하며 품위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시골 출신의 청년 알프레도가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가지만, 이들의 평화를 가로막고 이별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체면과 상식’이라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결국 비올레타는 절규 속에 무너진다. “내 무덤에는 울어줄 사람도, 꽃 한 송이도 없겠지. 신이여, 타락한 이 여자에게 미소를 허락해주세요.”(비올레타의 3막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베르디가 나 홀로 피아노를 치며 작곡했다는 비올레타의 이 아리아는 오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곡이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잘 불렀던 아리아이기도 한데,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라 스칼라의 객석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지금도 <라 트라비아타>는 프리마 돈나 오페라, 즉 여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오페라의 대명사이자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동백꽃 여인>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것인데, 원작에 비해 훨씬 더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명칭을 오페라의 제목으로 붙인 건 다분히 작곡가 자신의 의도였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중부의 시골마을 부세토 출신으로 당시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한참이나 세련된 밀라노로 유학을 떠나 처음부터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고향 땅에서 맺어진 부인 마르게리타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낳았으나 두 아이 모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급기야는 마르게리타마저도 병으로 숨을 거둔다.
커다란 실의에 빠진 베르디는 한때 오페라 작곡가의 붓을 꺾고 귀향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오페라 <나부코>가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당대의 청년 오페라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된다.
우리에게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희대의 명곡으로 유명한 이 작품에서 베르디는 또 하나의 귀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밀라노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불리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였다.
밀라노 대귀족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우아하고 사려 깊은 오페라 스타’와 홀아비 신세의 투박한 시골 출신 청년 작곡가는 <나부코>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국은 동거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베르디는 이제 금의환향을 꿈꾼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연인 스트레포니와 함께 기세 좋게 고향 땅으로 내려왔으나, 현실은 부세토 사람들의 가혹한 냉대와 차가운 따돌림이었다.
부세토의 유지 안토니오 바레치의 딸이었던 마르게리타를 객지에서 잃고는, 세련된 밀라노의 오페라 스타이자 뭔가 어두운 풍문이 있었던 스트레포니를 데리고 온 베르디가 고향 사람들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부세토 사람들의 차갑고도 잔인한 태도에 크게 상심한 베르디는 이후 다시는 고향 땅을 찾지 않는다. 대신 그는 부세토에서 조금 떨어진 산타가타라는 작은 마을에 자기만의 소박하고도 품위 있는 저택을 지어 스트레포니와 은거하게 된다. 이 시기에 작곡된 <라 트라비아타>는 당연히 그 시대와 당대 사람들의 도덕적 이중 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비록 프랑스 파리의 밤의 여자, 즉 화류계의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당당하며 품위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시골 출신의 청년 알프레도가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가지만, 이들의 평화를 가로막고 이별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체면과 상식’이라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결국 비올레타는 절규 속에 무너진다. “내 무덤에는 울어줄 사람도, 꽃 한 송이도 없겠지. 신이여, 타락한 이 여자에게 미소를 허락해주세요.”(비올레타의 3막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베르디가 나 홀로 피아노를 치며 작곡했다는 비올레타의 이 아리아는 오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곡이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잘 불렀던 아리아이기도 한데,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라 스칼라의 객석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지금도 <라 트라비아타>는 프리마 돈나 오페라, 즉 여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오페라의 대명사이자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