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진의 숫자로 보는 세상] 경쟁 없는 국민연금 운용, 우리 노후를 보장 못 한다
월급으로 300만원을 버는 직장인이 1년간 내는 국민연금은 본인과 본인의 직장을 합쳐 324만원(기준소득액의 9%)으로 한 달치 월급이 넘는다. 반면, 2028년 이후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은 월 120만원(소득대체율 40%)에 불과하다. 그것도 스무 살부터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해 정년이 될 때까지 40년 동안 꼬박 냈을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작년에 까먹은 수익금이 79조6000억원이라고 하니, 가입자 한 명당 350만원이 넘는 연금이 날아간 셈이다. 그나마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서 11조6000억원을 번 결과인데, 이에 대한 평가 방법을 확인하려 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지난 한 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 소위 GDP라 불리는 국내총생산은 2150조원이다. 올 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기금이 917조원이니 GDP의 43%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로, 글로벌 연기금의 3~4위에 이른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작년 말 총자산이 448조원이고, 미국 시총 1위 기업인 애플의 작년 말 총자산도 465조원인 것과 비교해 보면 국민연금의 엄청난 규모를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기금자산 배분을 기금운용위원회 20명이 결정한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위원 1인당 책임져야 할 기금 규모가 45조원을 넘는 것이다. 더욱이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정부 부처의 당연직이 6명,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의 대표자가 12명이고 국민연금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는 단 2명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최고의사결정 지배구조가 이렇다 보니 역대 최악의 성적에도 책임이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순도 100%의 완전한 경쟁이 자본시장의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경쟁이 없는 자본시장은 최적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없으며, 규모가 커질수록 불완전경쟁의 폐해는 증가하게 된다. 이제 곧 1000조원에 이를 국민연금기금을 더 이상 하나의 운영주체인 기금운용본부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다. 국민연금기금의 분할론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보수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정부안으로 발의되거나 논의됐지만, 정치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국민연금은 우리의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질적 수준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은 납부한 기여금을 적립해서 운용하는 확정기여 형태로 전환하고,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사적연금을 활용한 별도의 기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또 국민연금기금을 하위 여러 개의 운용기구에 배분해 전략적 자산 배분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기금 운용을 분할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개혁 사례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소득연금은 가입자가 더 오래 일할 때 더 많은 연금을 받도록 설계해 근로 의욕을 높임으로써 연금의 재정 건전성에 기여했으며, 프리미엄연금은 사적연금을 활용해 소득 부족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소득대체율을 높였다. 첫 해외 출장지의 하나로 스웨덴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국민연금 개혁의 해법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