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핫픽' 호퍼 전시회서 꼭 봐야 할 베스트 5 [전시 가이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불 꺼진 어두운 방,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 그 속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인….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이 그림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다녀온 관람객들의 ‘인증샷’입니다.
호퍼 전시는 요즘 ‘미술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리는 곳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미술관 앞에 ‘오픈런’을 위한 긴 줄이 늘어설 정도죠. 전시 개막 전 사전예매 티켓만 13만 장 넘게 팔렸고, 평일에도 하루 3500~4000명씩 전시장을 찾는다고 하네요.
전시 규모는 상당합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 160여 점뿐 아니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까지, 호퍼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두 개층에 걸쳐 펼쳐집니다.
‘이 중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은 뭘까?’ 규모가 꽤 크다 보니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분들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호퍼 작품 Best 5’를 꼽아봤습니다.
① 호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푸른 저녁'(1914)

‘파리’ 섹션에 있는 이 그림을 찾으려면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삐에로 분장을 한 남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죠. 호퍼는 1906~1910년 파리를 세 차례 방문하면서 봤던 광경을 이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왜 하필 이 작품일까요?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호퍼가 생전에 딱 한 번만 전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내 그림 솜씨를 보여주겠다’며 야심차게 폭 1.8m에 달하는 긴 캔버스에 그렸는데, 막상 1915년 그룹전에서 선보이자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분이 상한 호퍼는 다시는 이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죠.
이 작품은 나중에 재평가받게 됩니다. 호퍼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술관이자,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휘트니미술관은 “‘군중 속 내면의 고독’이라는 호퍼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고독이라는 깊고 심오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고독의 화가’란 호퍼의 별명이 실감나는 작품입니다.
② 美 대통령이 '인증샷' 찍은 '벌리 콥의 집…(1930~33)'

그림의 배경은 메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트루로(Truro)’입니다. 1930년 여름, 호퍼가 아내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트루로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우체국장인 벌리 콥의 집을 빌렸다고 합니다.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호퍼 부부는 이후 세 차례나 더 이 집을 방문했다네요. 호퍼는 특유의 감각적인 색채와 붓질이 잘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호퍼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뒤에 있는 언덕과 들판은 ‘자연’을 상징하고, 그 앞의 집은 ‘문명’을 뜻합니다. 이 그림처럼 호퍼는 자연과 문명을 한 캔버스에 담곤 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이 그림을 감상하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면 어떨까요.
③ 호퍼가 가장 사랑했던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바로 ‘빛’입니다. 호퍼는 집 앞면과 옆면의 색채 대비를 통해 빛을 감각적으로 구현했습니다.
같은 섹션에 있는 ‘밤의 창문’(1928)에서도 이런 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 밖에서 안을 몰래 엿보고 있는 듯한 그림이죠. 호퍼는 어두컴컴한 바깥과 환하게 불이 켜진 실내를 대비해 사실적으로 빛을 그려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스릴러 소설의 삽화 같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④ 수채화의 매력을 알고 싶나요?...'맨해튼 다리(1925~1926)'

‘맨해튼 다리’(1925~1926)는 그 중에서도 대표작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뉴욕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에요. 당시 뉴욕은 고층빌딩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지하철과 자동차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호퍼는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문명’을 상징하는 맨해튼 다리와 자동차를 캔버스에 그렸습니다.
특히 수채화는 그가 좋아하던 기법이었습니다. 호퍼는 젊은 시절 ‘잘 나가는 삽화가’였는데, 정작 자신은 그 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40대가 돼서야 본인이 진짜 그리고 싶었던 수채화를 시작했죠.
자신이 좋아하던 걸 그려서 그런지, 이 그림은 수채화만의 매력이 참 잘 드러납니다. 미술계에선 “이 작품은 꼭 실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수채화의 아름다움이 사진으로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죠.
⑤ 호퍼의 유일한 뮤즈, '햇빛 속의 여인(1961)'

정답은 호퍼의 아내, ‘조세핀 호퍼’입니다. 미술을 전공했던 조세핀은 호퍼와 눈이 맞아, 만난 지 1년 만인 1924년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호퍼 미술인생의 유일한 ‘여성 뮤즈’입니다. 호퍼가 말년에 그린 이 걸작도 조세핀이 실제 나체로 서 있으면서 모델이 되어줬다고 합니다.
물론 둘의 사이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닙니다. 어떨 땐 말다툼을 하다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났던 조세핀을 호퍼가 질투해서 일부러 내조만 시켰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호퍼가 거장이 되기까지 조세핀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호퍼가 수채화를 시작한 것 역시 조세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미술관이 마지막 섹션에서 조세핀을 모델로 한 드로잉과 수채화를 배치한 이유입니다. 둘이 중고차를 사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던 기록, 손 잡고 함께 봤던 공연 티켓 등도 전시장에 놓여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