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겠는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박은아의 탐나는 책
편집자는 이런 문장을 쓰는 이를 찾아다닌다
이순자 지음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휴머니스트, 2022)
기획 이문경; 편집 임미경
편집자는 이런 문장을 쓰는 이를 찾아다닌다
이순자 지음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휴머니스트, 2022)
기획 이문경; 편집 임미경
감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1)
“그래, 인생 이모작이다. 이제부터 예전의 나는 없다.”(176쪽)
사실은 이런 문장을 쓰는 이를 찾아다닌다. 물론 새로울 것 없는 말,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하고 듣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할 때만큼은 세상 입에 닳지도 귀에 물리지도 않고 그저 이 말만이 그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뜻을 끝까지 알고 싶어진다.
멋이 들지도 멋을 내지도 않은 저 말을 내가 얼마나 깊은 진심으로, 얼마나 복잡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경험했는지 그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이 글을 읽기도 전에 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故) 이순자 작가의 글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2021년 11월 트위터에서였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이라는 지역 일간지 문학 공모전의 당선작 중 하나였던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세상에 나오고 백일이 넘게 흘러 갑자기 모두의 타임라인에 등장했고,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때 나는 한창 <사나운 애착>이라는 회고록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저 글을 읽으며 “기획안과 목차를 짜서 작가 대신 유족에게 출간 제안을 건넸다”는 여러 출판사 중 하나가 내가 일하는 출판사(더 정확하게는 나)이기를 바라기도 했으나, 바라기까지만 했다.
대체로 거기까지만 한다. 찾아 헤매던 저자를 찾은 날에도 거기까지만이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다른 작품이 쌓여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엄두가 안 나서.
그 엄두를 부러워하며 대신에 독자가 되기로 한다. 그러곤 그의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말들을 들으러 다닌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만 나오는 그런 말. 다른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렇게 살 수도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 정 하고 싶거든 흉내나 내야 하는 말. 그런 식으로 결국엔 모두를 질리게 만들어버린 말.
나는 그런 것을 주워들으러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냄새나는 밥집도 가고 지하철에도 실려 다니고 조회수가 128인 유튜브 영상도 보고 거기 달린 댓글도 읽는다.
거기서 누군가는 내가 딱 듣고 싶은 그런 말을 해준다. 지겹게 본 말이든 난생처음 듣는 말이든, 눈으로든 음성으로든, 몸짓으로든 전파로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이 그 사람이기만 하면. 그러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봐도 봐도 새롭기만 하다.
어떤 글은 반드시 세계를 만나게 한다. 작가 자신, 그가 만난 타인들, 그를 못살게 굴었으나 그가 각고로 살아낸 세상, 그의 ‘밑천’. 단 하나뿐인 이 세계에서 작가는 말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서 제멋대로 찧고 까부른다. 혼자 품기 아까운 삶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싶은 열망으로 (…) 그것은 분명 펄떡이는 내 삶이요, 행복이다.”(87쪽, 이하 모두 같은 쪽에서 인용)
쉰 중반 “고단한 삶의 끄트머리에서” 문제의 엄두를 낸 작가의 글쓰기는 독자에게도 살거나 쓸 엄두를 내보지 않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며, 누구의 삶이 수필이 아니며,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읽고, 나는 또 그 누구를 찾아다닌다.
1) 표준국어대사전 '엄두' 뜻풀이 부분
2) 변진경, ‘실버 취준생 분투기’의 나머지 조각을 찾아서, 시사IN 765호, 2022년 5월.
“그래, 인생 이모작이다. 이제부터 예전의 나는 없다.”(176쪽)
사실은 이런 문장을 쓰는 이를 찾아다닌다. 물론 새로울 것 없는 말,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하고 듣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할 때만큼은 세상 입에 닳지도 귀에 물리지도 않고 그저 이 말만이 그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뜻을 끝까지 알고 싶어진다.
멋이 들지도 멋을 내지도 않은 저 말을 내가 얼마나 깊은 진심으로, 얼마나 복잡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경험했는지 그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이 글을 읽기도 전에 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故) 이순자 작가의 글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2021년 11월 트위터에서였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이라는 지역 일간지 문학 공모전의 당선작 중 하나였던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세상에 나오고 백일이 넘게 흘러 갑자기 모두의 타임라인에 등장했고,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때 나는 한창 <사나운 애착>이라는 회고록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저 글을 읽으며 “기획안과 목차를 짜서 작가 대신 유족에게 출간 제안을 건넸다”는 여러 출판사 중 하나가 내가 일하는 출판사(더 정확하게는 나)이기를 바라기도 했으나, 바라기까지만 했다.
대체로 거기까지만 한다. 찾아 헤매던 저자를 찾은 날에도 거기까지만이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다른 작품이 쌓여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엄두가 안 나서.
그 엄두를 부러워하며 대신에 독자가 되기로 한다. 그러곤 그의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말들을 들으러 다닌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만 나오는 그런 말. 다른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렇게 살 수도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 정 하고 싶거든 흉내나 내야 하는 말. 그런 식으로 결국엔 모두를 질리게 만들어버린 말.
나는 그런 것을 주워들으러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냄새나는 밥집도 가고 지하철에도 실려 다니고 조회수가 128인 유튜브 영상도 보고 거기 달린 댓글도 읽는다.
거기서 누군가는 내가 딱 듣고 싶은 그런 말을 해준다. 지겹게 본 말이든 난생처음 듣는 말이든, 눈으로든 음성으로든, 몸짓으로든 전파로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이 그 사람이기만 하면. 그러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봐도 봐도 새롭기만 하다.
어떤 글은 반드시 세계를 만나게 한다. 작가 자신, 그가 만난 타인들, 그를 못살게 굴었으나 그가 각고로 살아낸 세상, 그의 ‘밑천’. 단 하나뿐인 이 세계에서 작가는 말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서 제멋대로 찧고 까부른다. 혼자 품기 아까운 삶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싶은 열망으로 (…) 그것은 분명 펄떡이는 내 삶이요, 행복이다.”(87쪽, 이하 모두 같은 쪽에서 인용)
쉰 중반 “고단한 삶의 끄트머리에서” 문제의 엄두를 낸 작가의 글쓰기는 독자에게도 살거나 쓸 엄두를 내보지 않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며, 누구의 삶이 수필이 아니며,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읽고, 나는 또 그 누구를 찾아다닌다.
1) 표준국어대사전 '엄두' 뜻풀이 부분
2) 변진경, ‘실버 취준생 분투기’의 나머지 조각을 찾아서, 시사IN 765호, 202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