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맥베스. 사진=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맥베스. 사진=국립오페라단
지난주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프로덕션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작품은 베르디의 <맥베스>. 평생 셰익스피어에 천착했던 베르디가 34세에 발표하고 52세에 개정한 오페라로 그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개성적이고 밀도 높은 수작으로 꼽힌다.

이번 프로덕션은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 수석지휘자인 캐나다 출신의 이브 아벨이 지휘를, 지난해 역시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기도>로 국립오페라단과 안면을 텄던 이탈리아의 파비오 체레사 팀이 연출을 맡았다. 필자는 A캐스팅이 출연한 토요일(4월 29일) 공연을 보았다.
맥베스 포스터.
맥베스 포스터.
전주곡이 흐르는 동안 막이 열리자 사뭇 인상적인 무대가 눈길을 끌었다. 무대 중앙에 사람의 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구조물이 서있었고, 그 눈동자로부터 세 명의 무용수가 걸어 나와 마임을 펼치기 시작했다.

구조물과 그 앞의 평면은 ‘초자연계와 물질계를 이분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고, 극중 등장인물들은 상황에 따라 그 경계를 넘나들며 연기와 노래를 펼쳤다.

공연 내내 지속된 이 구도를 통해서 연출가는 일종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암시했다. 즉 예의 구조물은 인간사를 지켜보고 좌우하는 ‘운명의 눈’이었고 세 무용수는 ‘운명의 실타래’를 희롱하는 여신들이었으며, 인간들의 운명은 애초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연출가는 비교적 밝은 조명과 선명한 색조의 의상을 통해서 <맥베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최대한 경감하려 한 듯했다. 그리고 그런 연출 기조 위에서 전개된 ‘벨칸토 드라마’에서 필자는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느꼈다.

일단 음악적인 면에서는 만족감이 컸다. 가장 돋보였던 가수는 맥베스 부인 역의 임세경이었다.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탁 트인 음색으로 경이로운 성량을 뿜어내는 그녀의 장쾌한 가창은 벨칸토 오페라 고유의 선율적 쾌감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맥베스 역의 양준모도 훌륭했다. 그의 중후하고 깊이 있는 가창과 연기는 극의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맥베스가 비극적 회한을 표출하는 4막 아리아에서 들려준 절창은 특기할 만했다.
사진=국립오페라단
사진=국립오페라단
방코 역의 박종민도 특별했다. 누구보다 풍부한 성량을 장비하고 있으면서도 1막에서는 자제하며 다른 배역들과 균형을 맞추다가 2막, 단 한 번의 아리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산화했다. 아울러 이브 아벨의 노련한 지휘 아래 시종 안정감 있는 연주를 들려준 경기 필하모닉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 몫 단단히 했다.

불만은 아마 필자의 선입견이 유발한 면이 컸을 듯싶다. <맥베스>는 ‘중세 스코틀랜드’라는 원작의 배경도 그렇거니와, 베르디의 음악도 단조 위주로 진행되어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색조를 띤 작품이다.

특히 맥베스 부인의 경우 ‘절대 고운 목소리의 가수가 불러서는 안 된다’고까지 했던 작곡가의 당부를 떠올리자면 기본적으로 고운 미성의 소프라노인 임세경의 캐스팅은 배역이 요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사진=국립오페라단
사진=국립오페라단
아울러 시각적으로 어둠과 무거움보다는 밝음과 산뜻한 대비를 선호하는 듯했던 연출가의 취향도 작품의 비극적 흐름과 일정 정도 괴리감을 유발하여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었다.

나아가 ‘운명론’에 입각한 연출상의 설정 또한 ‘욕망에 의한 파멸’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주제의식을 다분히 희석시켜 비극적 임팩트를 약화한 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