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작품 훼손' 서울대생에 쏟아지는 맹비난, 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카텔란 작품 속 바나나 먹었다"
'셀프 제보' 대학생에 비난 봇물
미술계 "관심 받으려는 욕심에
4년 전 퍼포먼스 표절 후 자랑"
리움미술관도 '무대응' 일관
'셀프 제보' 대학생에 비난 봇물
미술계 "관심 받으려는 욕심에
4년 전 퍼포먼스 표절 후 자랑"
리움미술관도 '무대응' 일관
‘먹금’(먹이 금지)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라는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도 있지요. 인지도가 높으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세상이니, 나쁜 관심이라도 받는 게 무관심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며칠 전 날아온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제 지인이 리움미술관 카텔란의 작품을 먹었다”는 ‘제보 메일’을 미술 담당 기자 상당수가 무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메일에는 20대 남성(노모씨)이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나나를 떼서 먹고 껍질을 다시 붙여놓는 사진과 동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술계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사건이었는데요. 카텔란은 몇 달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글쎄, 왜 먹었는지 모르겠다. 칼륨이 부족했던 걸까?”
그런데 서울대 게시판에는 비판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씨의 행동이 과거 퍼포먼스를 모방한 ‘표절 작품’이라는 게 비판의 주된 근거입니다. “톰브라운 명품 넥타이까지 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뒤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까지 한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처음 이메일을 받고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술 담당 기자에게는 하루에도 100통 넘게 기사화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옵니다. 그중에는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이야기도 적잖게 섞여 있습니다. 이번 이메일을 보고도 ‘누가 봐도 관심을 받기 위해 벌인 이런 사건을 굳이 독자들이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새로운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설마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한 학생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이미 있던 퍼포먼스를 그대로 따라하면서, 명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은 브랜드의 넥타이를 차고, 누가 봐도 관심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고 스스로 언론사에 이메일을 돌린 것은 혹시 모두 의도된 행동 아닐까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이란 것은 대체 뭘까, 관심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미학이라는 것은 또 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슈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네요.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지만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며칠 전 날아온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제 지인이 리움미술관 카텔란의 작품을 먹었다”는 ‘제보 메일’을 미술 담당 기자 상당수가 무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메일에는 20대 남성(노모씨)이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나나를 떼서 먹고 껍질을 다시 붙여놓는 사진과 동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슨 작품이길래
해당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카텔란의 개인전 ‘위’. 작품 제목은 ‘코미디언’ 입니다. 바나나를 벽면에 테이프로 붙인 개념 미술 작품인데요. 2019년 아트페어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 선을 보였습니다. 그저 벽에 덕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였을 뿐인데,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12만달러라는 거액에 팔렸습니다. 예술품에 가격을 매겨 사고파는 게 과연 합리적인 일인지, 현대미술에서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등 여러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었지요. 이 작품이 더욱 유명해진 데에는 어떤 행위예술 작가가 벽에 붙은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한 것도 한몫했습니다.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 바나나를 붙였는데요. 실물 바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인 뒤 아트페어에서 팔았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개념미술 작품이라 가능했습니다. 이 또한 개념미술의 의미,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 등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그야말로 미술계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사건이었는데요. 카텔란은 몇 달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글쎄, 왜 먹었는지 모르겠다. 칼륨이 부족했던 걸까?”
서울대생이 비난 한몸에 받는 이유?
이번에 노씨가 벌인 사건은 2019년 아트바젤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미술관 측이 바나나를 먹은 이유를 묻자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고팠다”고 했고요. 미술관은 노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고 새 바나나를 다시 붙여놨습니다.그런데 서울대 게시판에는 비판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씨의 행동이 과거 퍼포먼스를 모방한 ‘표절 작품’이라는 게 비판의 주된 근거입니다. “톰브라운 명품 넥타이까지 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뒤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까지 한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처음 이메일을 받고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술 담당 기자에게는 하루에도 100통 넘게 기사화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옵니다. 그중에는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이야기도 적잖게 섞여 있습니다. 이번 이메일을 보고도 ‘누가 봐도 관심을 받기 위해 벌인 이런 사건을 굳이 독자들이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새로운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설마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한 학생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이미 있던 퍼포먼스를 그대로 따라하면서, 명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은 브랜드의 넥타이를 차고, 누가 봐도 관심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고 스스로 언론사에 이메일을 돌린 것은 혹시 모두 의도된 행동 아닐까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이란 것은 대체 뭘까, 관심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미학이라는 것은 또 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슈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네요.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지만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