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거리가 되는 책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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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주의 탐나는 책
게일 루빈 지음
임옥희 외 옮김
<일탈> (현실문화, 2015)
게일 루빈 지음
임옥희 외 옮김
<일탈> (현실문화, 2015)
다소 자기 비하하는 기질이 있는 것인지, 나는 다른 편집자들이 작업한 책들을 보고 이런 책은 내가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담당했더라면 그 좋은 책을 이상하게 망쳐놓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도서관 한구석에 오래도록 파묻혀 있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기획 단계에서 예측한 판매량에 실제 판매량이 근접한 경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극심한 논쟁이 벌어질 거라고, 출판사로 문의가 쏟아져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책을 만들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민망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어떤 책이든 2쇄를 찍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며, 책을 둘러싸고 뭔가 거창한 논쟁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는 섣불리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책 판매가 덜 되는 일은 (회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지언정)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지만, 만든 책이 전혀 혹은 제대로 논쟁이 되지 않는 일은 견뎌내기 힘들다. 담당하고 있는 책이 주로 학술서, 이론서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2015년 레즈비언이자 사도마조히스트로 커밍아웃한 인류학자 게일 루빈의 논문 선집인 <일탈>이 출간되었을 때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
나 역시 이전에 루빈의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 어떨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퀴어학, 포르노그래피, 아동성애, 그리고 S/M 등의 성적 하위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급진적인 관점을 제시해온 이 책이 국내에서 관심은커녕 비난만 받게 될 것이라 판단해 일찌감치 기획을 날려버렸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 선집의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내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당시는 본격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성장하기 직전으로 어떤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었고, 모든 성애의 급진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이 책을 경유해 당장 모든 방향으로 논쟁이 시작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치 내가 이 책의 담당자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수시로 정보를 검색해보고 관련된 분들께 책과 관련한 상황을 여쭈어보곤 했는데, 책은 호평을 받았고, 판매도 나쁘지 않았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글이 발표될 때마다 극단적인 적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온갖 사유의 기반을 뒤엎어버리는 책에 대한 반응치고는 지나치게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짐작일 뿐이지만, 특정 주제들, 루빈을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받게끔 했던 그녀에게 있어 핵심적인 사유들이 당시 우리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거나, 어쩌면 다른 부분들만 편리하게 받아들이고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하다. 이를 통해 역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경험한 10년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내가 담당했더라면 그 좋은 책을 이상하게 망쳐놓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도서관 한구석에 오래도록 파묻혀 있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기획 단계에서 예측한 판매량에 실제 판매량이 근접한 경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극심한 논쟁이 벌어질 거라고, 출판사로 문의가 쏟아져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책을 만들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민망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어떤 책이든 2쇄를 찍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며, 책을 둘러싸고 뭔가 거창한 논쟁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는 섣불리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책 판매가 덜 되는 일은 (회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지언정)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지만, 만든 책이 전혀 혹은 제대로 논쟁이 되지 않는 일은 견뎌내기 힘들다. 담당하고 있는 책이 주로 학술서, 이론서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2015년 레즈비언이자 사도마조히스트로 커밍아웃한 인류학자 게일 루빈의 논문 선집인 <일탈>이 출간되었을 때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
나 역시 이전에 루빈의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 어떨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퀴어학, 포르노그래피, 아동성애, 그리고 S/M 등의 성적 하위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급진적인 관점을 제시해온 이 책이 국내에서 관심은커녕 비난만 받게 될 것이라 판단해 일찌감치 기획을 날려버렸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 선집의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내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당시는 본격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성장하기 직전으로 어떤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었고, 모든 성애의 급진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이 책을 경유해 당장 모든 방향으로 논쟁이 시작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치 내가 이 책의 담당자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수시로 정보를 검색해보고 관련된 분들께 책과 관련한 상황을 여쭈어보곤 했는데, 책은 호평을 받았고, 판매도 나쁘지 않았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글이 발표될 때마다 극단적인 적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온갖 사유의 기반을 뒤엎어버리는 책에 대한 반응치고는 지나치게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짐작일 뿐이지만, 특정 주제들, 루빈을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받게끔 했던 그녀에게 있어 핵심적인 사유들이 당시 우리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거나, 어쩌면 다른 부분들만 편리하게 받아들이고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하다. 이를 통해 역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경험한 10년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