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PO 꿈꾸는 벤처인을 공정위는 '총수'로 지정할텐가 [박동휘의 컨슈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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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문제를 굳이 어렵게 풀려고 하네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동일인) 지정’ 제도와 관련해 ‘외국 국적 규정’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벤처기업인 A씨의 반응이다. 인공지능(AI)을 통한 데이터 학습으로 제약·바이오 분야의 스마트 팩토리 개발회사를 설립한 그는 미국에서 기업 공개(IPO)를 하는 것이 목표다. A씨는 반문했다. “한국 국적의 기업인이 미국에서 IPO에 성공하고 그 기업 집단의 자산이 5조원을 넘어서면 공정위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건가요?”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가 미국 국적의 기업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적이 미국 등 외국인데 자산 총액이 5조원(작년 말 기준)이상인 한국 법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를 총수(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이슈’다.
‘공정 프레임’에 기초한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한기정 공정위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 “제도적 미비로 외국인 동일인 지정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 위원장이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규제 공백’이다. 외국 국적을 활용해 대기업의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한 공정위의 감시망을 벗어나려는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를 비롯해 미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 벤처기업인들이 ‘쉬운 문제를 복잡하게 풀려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기업인의 대한민국 국적 여부에만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공정위의 규제 실효성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시장에 상장해 미국증권거래소(SEC)와 미국 연방법령(CFR)의 통제를 받는 기업에 대해 공정위가 총수를 지정하고, 그를 포함해 친족의 모든 기업 관련 행위를 보고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은 이중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 위원장도 “별도 기준없이 김범석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집단 지정제는 1987년 탄생했다. 직선제 도입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다. 개발도상국 역사상 정치적 민주주의와 특정 경제 권력에 대한 제어가 동시에 이뤄진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로부터 36년이 흘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동일인 지정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입법”이라고 일갈했다. ‘시대적 사명의 유효 기간’이 다했다는 것이다. ‘동일인’을 영어로 번역하면 ‘Same person’이다. 영미법에 마땅한 법률 용어가 없어서다.
그나마 공정위가 ‘낡은 규제’라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국적 소재지가 아니라 실효성을 최우선으로 동일인 지정제를 보완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인)의 불법 행위를 효과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 등 선진국 자본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동일인을 법인으로 하거나 아예 동일인 지정을 하지 않도록 제도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 국적을 편법으로 활용하는 기업인에 대해선? 이 사안은 공정위의 현재 역량이면 충분히 규제 공백 없이 대처할 수 있다. 공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기업집단 동일인·배우자·동일인 2세의 국적 현황을 조사, 이우현 부회장 등 16개 기업, 31명에 대한 외국 국적 여부를 확인했다. 올해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잘 하면 될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가 미국 국적의 기업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적이 미국 등 외국인데 자산 총액이 5조원(작년 말 기준)이상인 한국 법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를 총수(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이슈’다.
◆‘공정 프레임’에 기초한 ‘외국 국적’ 논란
올해는 형평성 논란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발단은 OCI그룹에서 비롯됐다. 동일인으로 지정된 이우현 부회장의 미국 국적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질문의 화살이 쿠팡으로 쏠렸다. 미국 국적자인 김범석 쿠팡Inc 대표 역시 ‘쿠팡그룹’의 총수로 지정해야한다는 주장이 또 다시 등장했다. 국내 1호로 2020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에 대해 공정위는 올해로 3년째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공정 프레임’에 기초한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한기정 공정위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 “제도적 미비로 외국인 동일인 지정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 위원장이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규제 공백’이다. 외국 국적을 활용해 대기업의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한 공정위의 감시망을 벗어나려는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를 비롯해 미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 벤처기업인들이 ‘쉬운 문제를 복잡하게 풀려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기업인의 대한민국 국적 여부에만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공정위의 규제 실효성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시장에 상장해 미국증권거래소(SEC)와 미국 연방법령(CFR)의 통제를 받는 기업에 대해 공정위가 총수를 지정하고, 그를 포함해 친족의 모든 기업 관련 행위를 보고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은 이중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 위원장도 “별도 기준없이 김범석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만의 갈라파고스법”
현행 공정거래법상 한국 국적자인 A씨의 스마트 팩토리 기업도 수년 내에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에 상장해 자산 5조원을 넘길 경우 자동적으로 대기업 집단에 지정된다. 이 회사의 이사회는 과연 공정위의 ‘한국식 규제’를 납득할 수 있을까. 회사를 더욱 키워야 할 A씨가 공정위에 제출할 서류를 만드느라 평소 일면식도 없던 친족들을 찾아서 어디에 얼마나 투자했는 지를 일일히 알아내느라 회사 경영에 소홀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대기업 집단 지정제는 1987년 탄생했다. 직선제 도입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다. 개발도상국 역사상 정치적 민주주의와 특정 경제 권력에 대한 제어가 동시에 이뤄진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로부터 36년이 흘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동일인 지정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입법”이라고 일갈했다. ‘시대적 사명의 유효 기간’이 다했다는 것이다. ‘동일인’을 영어로 번역하면 ‘Same person’이다. 영미법에 마땅한 법률 용어가 없어서다.
그나마 공정위가 ‘낡은 규제’라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국적 소재지가 아니라 실효성을 최우선으로 동일인 지정제를 보완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인)의 불법 행위를 효과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 등 선진국 자본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동일인을 법인으로 하거나 아예 동일인 지정을 하지 않도록 제도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 국적을 편법으로 활용하는 기업인에 대해선? 이 사안은 공정위의 현재 역량이면 충분히 규제 공백 없이 대처할 수 있다. 공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기업집단 동일인·배우자·동일인 2세의 국적 현황을 조사, 이우현 부회장 등 16개 기업, 31명에 대한 외국 국적 여부를 확인했다. 올해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잘 하면 될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