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음악의 신세계…불멸의 소리 꽃피운 '불멸의 지휘자' [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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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불멸'
韓 악단엔 생소한 덴마크 음악
다우스고르의 카리스마로 압도
1부에서 선보인 랑고르 '낙엽'은
악단이 악보에 갇힌 듯해 아쉬워
韓 악단엔 생소한 덴마크 음악
다우스고르의 카리스마로 압도
1부에서 선보인 랑고르 '낙엽'은
악단이 악보에 갇힌 듯해 아쉬워
국내에선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덴마크 음악의 정취(情趣)를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격렬한 악상과 극적인 표현, 치밀한 구조 속에서 배어 나오는 입체적인 연주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것 같은 신선함과 덴마크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덴마크 출신 토마스 다우스고르(사진)의 지휘로 막을 연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불멸’ 얘기다.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콘서트홀은 악단 단원들의 연습 소리로 가득 찼다. 홀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맹연습하는 모습에서 루에드 랑고르의 교향곡 4번 ‘낙엽’이 한국에서 처음 연주되는 무대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무대에 오른 지휘자 다우스고르는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현악기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진행과 웅장한 울림, 강렬한 터치로 이뤄진 관악기의 진행을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작품 특유의 변화무쌍한 악상을 살려냈다. 섬세한 지휘에 응답하듯 각 악기군의 선율 또한 한쪽으로 엉겨 붙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예민하게 움직였다.
한계는 있었다. 악단조차 작품이 생소했던 탓인지 통일된 소리와 방향성보다는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그친다는 인상을 남겼다. 각 악기군이 선율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일정하지 않았고, 파트별로 악상이 맞물리며 고조되는 에너지도 다소 모자란 느낌이었다.
아쉬움은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 알렉세이 볼로딘의 협연으로 메워졌다. 그가 연주한 곡은 ‘비르투오소(기교가 뛰어난 연주자) 피아니스트’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리스트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초반 투박한 터치와 불분명한 음이 몇몇 들리긴 했으나 이내 페이스를 찾은 볼로딘은 유연한 손 움직임과 명료한 터치로 리스트의 오색찬란한 악상을 펼쳐냈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마치 물방울이 굴러가듯 맑은 선율을 빚어내다가도 금세 강한 타건으로 주요 선율의 뼈대를 짚어내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그의 연주에서 묻어나오는 러시아 특유의 짙은 애수는 리스트의 화려한 서정에 한 겹의 색채를 덧입히듯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지막 곡은 카를 닐센의 교향곡 4번 ‘불멸’. 제1차 세계대전 중 작곡된 곡으로 ‘어떠한 힘으로도 멸할 수 없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다우스고르는 과감하면서도 확신에 찬 해석으로 강렬한 선율과 목가적인 선율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그러자 작품 특유의 역동성이 살아났다. 금관악기의 거대한 울림 안에서 현악기가 세밀한 움직임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며 만들어내는 광대한 파장은 단숨에 객석을 압도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소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쌓아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강한 추진력은 외부의 힘으로부터 저항하는 ‘불멸’의 소리를 표현해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명의 팀파니스트가 교차로 악기를 내려치며 대결 구도를 만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장대한 팀파니의 울림과 질주하는 현악기 선율, 명료한 관악기의 음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숨 막힐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은 덴마크 음악에 대한 다우스고르의 깊은 통찰과 애정,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KBS교향악단의 열정이 빚어낸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콘서트홀은 악단 단원들의 연습 소리로 가득 찼다. 홀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맹연습하는 모습에서 루에드 랑고르의 교향곡 4번 ‘낙엽’이 한국에서 처음 연주되는 무대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무대에 오른 지휘자 다우스고르는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현악기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진행과 웅장한 울림, 강렬한 터치로 이뤄진 관악기의 진행을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작품 특유의 변화무쌍한 악상을 살려냈다. 섬세한 지휘에 응답하듯 각 악기군의 선율 또한 한쪽으로 엉겨 붙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예민하게 움직였다.
한계는 있었다. 악단조차 작품이 생소했던 탓인지 통일된 소리와 방향성보다는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그친다는 인상을 남겼다. 각 악기군이 선율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일정하지 않았고, 파트별로 악상이 맞물리며 고조되는 에너지도 다소 모자란 느낌이었다.
아쉬움은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 알렉세이 볼로딘의 협연으로 메워졌다. 그가 연주한 곡은 ‘비르투오소(기교가 뛰어난 연주자) 피아니스트’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리스트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초반 투박한 터치와 불분명한 음이 몇몇 들리긴 했으나 이내 페이스를 찾은 볼로딘은 유연한 손 움직임과 명료한 터치로 리스트의 오색찬란한 악상을 펼쳐냈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마치 물방울이 굴러가듯 맑은 선율을 빚어내다가도 금세 강한 타건으로 주요 선율의 뼈대를 짚어내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그의 연주에서 묻어나오는 러시아 특유의 짙은 애수는 리스트의 화려한 서정에 한 겹의 색채를 덧입히듯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지막 곡은 카를 닐센의 교향곡 4번 ‘불멸’. 제1차 세계대전 중 작곡된 곡으로 ‘어떠한 힘으로도 멸할 수 없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다우스고르는 과감하면서도 확신에 찬 해석으로 강렬한 선율과 목가적인 선율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그러자 작품 특유의 역동성이 살아났다. 금관악기의 거대한 울림 안에서 현악기가 세밀한 움직임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며 만들어내는 광대한 파장은 단숨에 객석을 압도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소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쌓아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강한 추진력은 외부의 힘으로부터 저항하는 ‘불멸’의 소리를 표현해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명의 팀파니스트가 교차로 악기를 내려치며 대결 구도를 만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장대한 팀파니의 울림과 질주하는 현악기 선율, 명료한 관악기의 음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숨 막힐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은 덴마크 음악에 대한 다우스고르의 깊은 통찰과 애정,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KBS교향악단의 열정이 빚어낸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