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 패키지 법안을 의결했다. 국가수당을 축소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1일(현지시간) 내각 회의를 열고 이탈리아의 기본소득 정책 '시민소득'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노동시장 개혁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소득은 이탈리아 정부가 2019년 도입한 국가수당이다. 국민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생계를 위협받지 않도록 국가가 기본적인 소득을 지급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었다.

멜로니 총리는 내각 회의를 마친 뒤 "우리는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시민소득을 개혁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시민소득 제도가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키우고 청년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며 혜택 축소를 주장해왔다. 시민소득에 지출된 정부재정은 지난해 80억유로(약 12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안에 따르면 18∼59세 빈곤층에 대한 시민소득은 현재 가구당 평균 월 550유로(약 81만원)에서 내년 1월부터는 월 350유로(약 51만원)로 삭감된다. 시민 소득 수령 기간은 최대 12개월로 제한된다. 이 기간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대신 미성년자, 60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이 속한 가구는 최대 30개월 동안 월 500유로 이상을 지급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또한 이번 개편안에는 기업이 12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단기 고용 계약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탈리아 정부는 당근책도 함께 제시했다. 연간 소득이 3만5000유로 이하인 근로자들에게 6개월간 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기 위해 약 40억유로의 예산을 배정하면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노동소득에 대한 조세 격차(tax wedge·고용주의 총 고용 비용과 직원의 순취득 급여의 차액)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녀를 둔 근로자에 대해선 연간 최대 3000유로의 세금 면제로 부가적 혜택을 늘렸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재정부 장관은 "생활비 위기에 맞선 구체적인 조치"라며 "월평균 100유로의 감세 혜택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15∼29세 청년층 가운데 구직을 단념한 비율은 2021년 기준 23.1%에 달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EU 평균치인 13.1%의 두 배에 해당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민소득 축소, 단기 일자리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는 채용의 어려움과 고용 비용을 호소하는 기업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탈리아 청년층의 구직 활동을 장려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병자' 이탈리아, 노동개혁에 시동걸었다
그러나 주요 노조와 야당은 정부가 노동자들을 생계 위기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 양산돼 고용 불안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인 오성운동(M5S)의 대표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제대로 된 정부라면 노동절인 5월 1일에 젊은이들을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고 집과 자녀를 갖고자 하는 꿈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성운동은 2019년 연합정부에서 시민소득 입법을 주도했던 당이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IL)의 마우리치오 란디니 대표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은 것은 높은 세금과 고용 불안정 때문"이라며 "이번 패키지 법안이 고용 불안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베르토 피코 전 하원의장은 멜로니 총리가 노동절에 노동법 개악에 나섰다고 규탄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반발해 로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관공서 건물에 계란 등 오물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CNBC는 "이탈리아의 멜로니 정부가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9년 EU 회원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일대일로(시진핑 국가주석의 서부 진출을 위한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웃 국가들을 혼란에 빠트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