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에 손톱 깎으신 분?" 상사의 질책은 모두 괴롭힘일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 CHO Insight
조상욱 변호사의 '이슈 서핑'
조상욱 변호사의 '이슈 서핑'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직원간 다툼이 생긴 사건에 내려진 판결을 하나 소개한다 (의정부지방법원 2022. 11. 24. 선고 2022나200103 사건). 최근 자세한 언론 보도가 있었던 판결이다(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303187778i)
사안은 간단하다. 한의원에 근무하는 A는 근무시간 중 물리치료실에서 손톱을 깎았다. 팀장 B가 이를 알고 직원들이 가입한 단톡방에서 A를 질책했다. 판결문에는 당시 팀장 B의 질책 발언이 소상히 나온다. ‘어제 오후 근무시간에 손톱 깎으신 분?’, ‘진짜 개념없이 이런 행동 하신건가요?’, ‘애들도 아니고 매너는 지켜주세요’ 등이다.
A는 당시에는 별 반발을 않고 순순히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후 A는, 이 발언들이 직장 내 괴롭힘(따돌림)이라고 문제삼으면서, 팀장 B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그 밖에도 팀장 B를 노동청에 신고하고 경찰에 명예훼손 고소를 한 정황까지 판결문에는 나타나 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의 질책은 팀장으로서 업무 중 치료가 이루어지는 공간(물리치료실)에서 손톱을 깎은 행위가 부적절함을 지적한 것인데, A를 망신주거나 괴롭히려고 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상 판결은 상식에 부합하며 법리상 문제될 부분도 없다. 대상 판결을 내린 법원 뿐만 아니라 노동청과 경찰도 모두 A의 신고,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판결에는 법리보다 사건 자체에 더 눈길이 간다. A의 신고, 진정, 손해배상 청구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즘 세태, 즉 직장 내 상사 등 동료 직원의 단순한 질책, 실례 등 사소한 일까지 정식으로 신고하고, 나아가 법적 분쟁으로까지 쉽게 악화되는 현상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불가피하고 감수해야 한다고만 볼 것인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해 기업을 자문하며 비슷한 사례를 자주 접했고, 이런 사건들이 통상적으로 초래하는 사내 분위기 악화, 시간과 노력 낭비 등 부작용을 지켜 본 입장에서 대상 판결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정당한 질책이나 기껏해야 가벼운 실례에 불과한 언동까지 괴롭힘으로 신고되고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적 대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법 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 인정에 있어 지속·반복성과 의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거나, 그런 요소가 현저히 결여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부정된다고 명시하는 것이다.
법원은 이미 지속·반복성과 의도성을 널리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상 판결과 유사하게 질책 과정에서 언성을 높인 다소 부적절한 언급이 문제된 사안에서 "정당한 질책을 하는 과정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일 뿐 어떠한 악의적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계획된 행위는 아니었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이후 고성이나 폭언 등의 행위가 지속·반복된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밝힌 판결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나42155 판결, 심리불속행기각 확정)
그러나 이런 판결들은 어디까지나 신고나 법적 분쟁이 발생한 다음 개별 사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후 보완적 의미가 있을 뿐이다. 즉, 근본적·선제적 개선은 아닌 것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입법적 대책을 고민할 시기가 왔다.
둘째,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관장·감독하는 고용노동부가 이런 현상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현장 지도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4월 고용노동부가 새롭게 펴낸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 매뉴얼'이 △야단, 질책, 훈계 △근무 전 메시지 전송 △업무평가 등급을 사례 형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불인정되는 예로 소개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나아가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과 노동위원회 등의 사례가 많이 나올 것이다. 그 때마다 적시에 그 선례들을 적극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제일 먼저 접하는 인사·법무 담당자들의 균형 잡힌 자세다.
적정한 피해자 대응이 특히 중요한 직장 내 괴롭힘 분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법무 담당자들이 신고 후 조사 과정 전반에 걸쳐 피해자 존중 원칙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자 존중 원칙이 기업이 언제나 피해자 편에 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신고가 피해자가 너무 과민한 것에서 비롯한 사실상 근거가 부족한 것일 때, 그 신고를 무작정 존중하는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에게 너무나 억울한 일이 된다. 그런 조치가 쌓이고 쌓이면, 해당 기업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악용 문제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인사·법무 담당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후 조사와 그 후속 조치 과정에서 피해자 존중 원칙과 함께 공정한 인사와 인사질서 유지의 관점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인사·법무 담당자들의 소임이 중한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사안은 간단하다. 한의원에 근무하는 A는 근무시간 중 물리치료실에서 손톱을 깎았다. 팀장 B가 이를 알고 직원들이 가입한 단톡방에서 A를 질책했다. 판결문에는 당시 팀장 B의 질책 발언이 소상히 나온다. ‘어제 오후 근무시간에 손톱 깎으신 분?’, ‘진짜 개념없이 이런 행동 하신건가요?’, ‘애들도 아니고 매너는 지켜주세요’ 등이다.
A는 당시에는 별 반발을 않고 순순히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후 A는, 이 발언들이 직장 내 괴롭힘(따돌림)이라고 문제삼으면서, 팀장 B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그 밖에도 팀장 B를 노동청에 신고하고 경찰에 명예훼손 고소를 한 정황까지 판결문에는 나타나 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의 질책은 팀장으로서 업무 중 치료가 이루어지는 공간(물리치료실)에서 손톱을 깎은 행위가 부적절함을 지적한 것인데, A를 망신주거나 괴롭히려고 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상 판결은 상식에 부합하며 법리상 문제될 부분도 없다. 대상 판결을 내린 법원 뿐만 아니라 노동청과 경찰도 모두 A의 신고,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판결에는 법리보다 사건 자체에 더 눈길이 간다. A의 신고, 진정, 손해배상 청구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즘 세태, 즉 직장 내 상사 등 동료 직원의 단순한 질책, 실례 등 사소한 일까지 정식으로 신고하고, 나아가 법적 분쟁으로까지 쉽게 악화되는 현상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불가피하고 감수해야 한다고만 볼 것인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해 기업을 자문하며 비슷한 사례를 자주 접했고, 이런 사건들이 통상적으로 초래하는 사내 분위기 악화, 시간과 노력 낭비 등 부작용을 지켜 본 입장에서 대상 판결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정당한 질책이나 기껏해야 가벼운 실례에 불과한 언동까지 괴롭힘으로 신고되고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적 대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법 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 인정에 있어 지속·반복성과 의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거나, 그런 요소가 현저히 결여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부정된다고 명시하는 것이다.
법원은 이미 지속·반복성과 의도성을 널리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상 판결과 유사하게 질책 과정에서 언성을 높인 다소 부적절한 언급이 문제된 사안에서 "정당한 질책을 하는 과정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일 뿐 어떠한 악의적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계획된 행위는 아니었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이후 고성이나 폭언 등의 행위가 지속·반복된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밝힌 판결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나42155 판결, 심리불속행기각 확정)
그러나 이런 판결들은 어디까지나 신고나 법적 분쟁이 발생한 다음 개별 사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후 보완적 의미가 있을 뿐이다. 즉, 근본적·선제적 개선은 아닌 것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입법적 대책을 고민할 시기가 왔다.
둘째,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관장·감독하는 고용노동부가 이런 현상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현장 지도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4월 고용노동부가 새롭게 펴낸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 매뉴얼'이 △야단, 질책, 훈계 △근무 전 메시지 전송 △업무평가 등급을 사례 형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불인정되는 예로 소개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나아가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과 노동위원회 등의 사례가 많이 나올 것이다. 그 때마다 적시에 그 선례들을 적극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제일 먼저 접하는 인사·법무 담당자들의 균형 잡힌 자세다.
적정한 피해자 대응이 특히 중요한 직장 내 괴롭힘 분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법무 담당자들이 신고 후 조사 과정 전반에 걸쳐 피해자 존중 원칙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자 존중 원칙이 기업이 언제나 피해자 편에 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신고가 피해자가 너무 과민한 것에서 비롯한 사실상 근거가 부족한 것일 때, 그 신고를 무작정 존중하는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에게 너무나 억울한 일이 된다. 그런 조치가 쌓이고 쌓이면, 해당 기업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악용 문제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인사·법무 담당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후 조사와 그 후속 조치 과정에서 피해자 존중 원칙과 함께 공정한 인사와 인사질서 유지의 관점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인사·법무 담당자들의 소임이 중한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