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정당하게 했는데" 억울…강원 경찰 "적법절차 따라 수사"
민주노총 "50여회 압수수색, 950명 수사, 15명 구속…부당 탄압"
화물연대 파업 때 갈등 점화…대통령 사과 촉구, 총력 투쟁 예고
불법 vs 탄압 갈등 고조…노동절에 분신한 건설노조원 사망까지
건설 현장에서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노동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분신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가 2일 끝내 숨졌다.

수사기관이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며 종합대응팀을 꾸려 집중단속에 나서면서 민주노총은 "모든 건설 현장의 문제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해왔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모(50)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지면서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때부터 시작된 노조와 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불법 vs 탄압 갈등 고조…노동절에 분신한 건설노조원 사망까지
◇ "고용 문제 개선하려 했는데 억울" 메시지 남기고 분신
양씨는 전날 오전 9시 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몸에 휘발성 물질을 끼얹은 뒤 불을 붙였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불과 약 5시간 30분 앞둔 시점이었다.

전신화상을 입은 양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헬기를 통해 서울로 옮겨졌다.

의식을 잃었다 회복하기를 반복했으나 수술이 불가능한, 사실상 소생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는 노조원들에게 남긴 유서 형식의 편지에서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혐의가)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2019년부터 노조원으로 활동한 양씨는 지난해 5월부터 강릉, 양양, 고성, 속초 지역에서 지대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특수고용노동자인 건설노동자의 고용 형태 개선을 촉구하는 등 고용안정에 목소리를 내왔으나 수사선상에 오른 뒤 줄곧 억울함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틀 전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도 "고용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 활동에 임했던 건데 갈취, 업무방해 혐의로 영장 심사까지 받게 돼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양씨는 결국 동료 2명과 함께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에 이르렀다.

양씨 등에게는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강원 지역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는 등 공사를 방해하고 현장 간부 급여를 요구하는 등 피해 업체로부터 8천여만 원을 뜯어낸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심문을 앞둔 양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날 오후 1시 9분께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날 예정대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법원은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없어 구속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양씨 등 3명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은 있다"며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상황, 수집된 증거자료, 심문 과정에서 기존 입장을 번복해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점, 일부 피해자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박만연 강원건설기계지부장은 "수사기관에서 언급한 날짜에 건설 현장 소장 등 관계자를 만나 교섭했던 내용, 전임비를 송금받았던 사실 등 사실관계에 대해 시인한 것이지 마치 공모해서 돈을 갈취했다는 식으로 범행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치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불법 vs 탄압 갈등 고조…노동절에 분신한 건설노조원 사망까지
◇ 尹대통령 사과 촉구·취임 1주년 전면 투쟁 예고…갈등 고조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건설노조를 대상으로 이뤄진 사무실과 조합원 압수수색은 각각 13회와 40여 명이다.

950여 명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이들 중 15명이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조합원이 하나둘 구속될 때마다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저항했다.

이번에 숨진 양씨 역시 지난 3월 9일 강원경찰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압수수색 이튿날인 같은 달 10일 조합원들은 곧장 거리로 뛰쳐나와 "건설업계 불법과 비리로 점철된 현장을 바꿔 온 건설노조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건설업체와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노골적인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안한 고용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당한 요구와 투쟁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활동으로 매도당했다고 주장했다.

양씨가 숨지자 민주노총은 "오늘 영면한 노동자 죽음의 책임은 윤석열 정권에 있다"며 대정부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동지를 분신에 이르게 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 대통령 사과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해임,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하면서 "120만 노동자의 뜻을 모아 윤석열 정부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합원 동지가 지키고자 했던 건설노동자의 삶을 책임 있게 지켜나가겠다"며 "오는 10일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가 함께 모여 전면적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건설노조 역시 오는 4일 용산에서 5천명 규모의 윤석열 정권 규탄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열겠다고 했다.

앞서 양씨 사건을 수사한 강원경찰청은 "고인에 대한 수사는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하면서 변호인 참여 등 피의자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했다"며 노조의 '억지 수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 예정한 수사도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며 "고인의 사망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불법 vs 탄압 갈등 고조…노동절에 분신한 건설노조원 사망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