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장관·입법회 이어 구의회 선거제도 개편 진행
행정수반 직접선거 무산 속 풀뿌리 의회까지 직선 대폭 감축
"'친중 애국자'만 선거 나서라"…쪼그라드는 홍콩시민 참정권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지 3년여만에 시민의 참여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의 홍콩 선거제 개편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홍콩의 중국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보통 선거권'을 요구해온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는 응답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구의회 선거제 개편안이 확정되면 홍콩은 중국이 원하는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의 모습을 완성하게 될 전망이다.

민주 진영에서는 "분명한 퇴보"라며 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가 '예스맨'들로만 채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친중 애국자'만 선거 나서라"…쪼그라드는 홍콩시민 참정권
◇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는 홍콩 선거
홍콩에서 2019년 범죄인 송환법안에 반대해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반년 넘게 거세게 이어지자 중국은 직접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해 2020년 6월 30일 시행했다.

이어 2021년 5월에는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홍콩의 선거제를 개편했다.

가장 큰 특징은 공직 선거 출마자격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이를 통과한 이들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민주 진영 후보는 출마 자격을 얻는 것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또한 선거위원회(선거인단)의 기능을 강화해, 홍콩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뽑는 것에 더해 입법회(의회) 의원 다수를 뽑는 권한도 부여했다.

그에 따라 입법회의 직선 의석수가 기존 35석에서 20석으로 줄었고, 선거위원회(1천500명)가 뽑는 40석이 신설됐다.

여기에 직업군별 간접선거를 통해 뽑는 직능대표 의석 30석을 할당했다.

선거제 개편 후 처음 실시된 2021년 9월 선거위원회 선거는 친중 진영만 참여한 가운데 90%에 가까운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위원회 선거 자체가 간접선거인 데다 당국이 선거위원회 유권자 수마저도 기존 24만6천440명에서 7천971명으로 97%나 줄였기 때문이다.

또한 364명을 뽑는 선거에 친중 진영의 사전 조율을 거쳐 412명만이 출마했다.

"'친중 애국자'만 선거 나서라"…쪼그라드는 홍콩시민 참정권
◇ 민주 진영 불참 속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한 입법회 선거
이후 2021년 12월에는 입법회 선거가 실시됐는데 민주 진영의 불참 속 30.2%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90석 중 89석을 친중 진영이 가져가고 자칭 '중도파'가 1석을 차지했다.

범민주진영에서는 자격심사위원회 설치와 직선 의원 수 축소 등에 반발해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에 앞서 2020년 11월 홍콩 입법회에는 민주 진영 의원들이 동료 의원 4명의 자격 박탈에 항의해 총사퇴하면서 친중 진영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차기 입법회도 친중 진영으로만 채워지게 되자 많은 홍콩인은 일찌감치 입법회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항의를 뜻하는 '백지투표'가 3천141표로 4년 전 선거 때의 922표보다 3배 이상 늘어났으며, 무효표는 4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직선 의원 수가 줄어들고 친중 진영이 장악하면서 입법회는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홍콩이 국가보안법과 선거제 개편으로 안정을 되찾았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친중 애국자'만 선거 나서라"…쪼그라드는 홍콩시민 참정권
◇ 사라진 '보통 선거권'…국민 0.02%가 행정수반 뽑아
이어 지난해 5월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는 중국 측이 낙점한 존 리 후보가 단독 출마해 선거위원회 정원 대비 94%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친중 진영이 장악한 선거위원회의 간접 선거로 치러진 이른바 '체육관 선거'는 투표율 97.74% 속 3시간도 안 돼 끝났다.

재적 과반(751표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되는데, 당시 유효표 1천424표를 기준으로 리 후보의 득표율은 99.4%였다.

홍콩에서는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이 거세게 일어났고 이후에도 시민사회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시민 모두가 차별 없이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보통 선거권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도 중국에 홍콩의 모든 시민이 입후보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보통선거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재 홍콩 행정장관은 국민의 0.02%에 불과한 인원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뽑고 있다.

지난해 행정장관 선거일에도 홍콩 야당 사회민주연선 당원들이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 행진을 펼치며 "행정장관 선거에 시민 1인 1표를 즉각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간접선거이지만 직전인 2017년 선거까지는 나름대로 치열한 경선이 펼쳐지기도 했다.

민주 진영도 후보를 냈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위원회에도 민주 진영이 상당 비율을 차지한 덕분이었다.

친중 진영 간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의 선거제를 손본 후 이러한 일은 이제 사실상 원천 봉쇄됐다.

"'친중 애국자'만 선거 나서라"…쪼그라드는 홍콩시민 참정권
◇ 풀뿌리 구의회도 직선 의석 비중 19%로 뚝…"한목소리만 낼 것"
이런 가운데 지난 2일에는 구의회에서도 직선 의원 수를 대폭 감축하는 내용의 구의회 선거 개편안이 발표됐다.

홍콩 구의원 선거는 4년마다 치러지며 2019년 11월 선거 때는 선출직 452석(94%), 당연직 27석 등 479석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개편안은 선출직을 88석으로 대폭 감축하고 대신 정부 임명직 179석, 친중 진영 2천490명으로 구성된 지역 위원회 3곳(구위원회·소방위원회·범죄수사위원회)이 선출하는 176석으로 구성된다.

또 27석은 지역 대표들이 채운다.

이렇게 되면 전체 의석 중 약 19%만이 유권자에 의해 뽑힌다.

게다가 각 구의회 의장은 정부 관리가 맡도록 했다.

개편안이 입법회를 통과하면 11월 말께 차기 구의원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2019년 반정부 시위 도중 치러진 직전 구의원 선거는 민주화 요구 속 역대 가장 높은 71.2%의 투표율 속에서 민주당 등 범민주 진영이 392석을 차지했다.

이후 새롭게 뽑힌 구의원들이 반정부 시위의 대의를 옹호하면서 정부 관리들과 충돌이 이어졌다.

이에 홍콩 당국은 구의원들이 공격적이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현수막을 내 걸 경우 회의장을 퇴장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구의회 선거제 개편에 대해 "직선 의원 수가 많은 게 더 좋다는 데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반중 문제아들과 독립·폭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구의회를 조종하고 마비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9년의 검은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구의원들이 홍콩의 이익을 사보타주(고의 파괴공작)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우시우카이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컨설턴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 정부가 구의회에 직선 의원을 남겨둔 것은 개편에 대한 주민의 지지를 얻고 야당의 참여 여지를 남겨두기 위함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옥 홍콩중문대 교수는 "개편안은 선출 기관으로서 구의회의 종말을 고한다"며 "행정기관의 확장이나 자문기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번스 홍콩대 명예교수는 "개편안은 분명한 퇴보"라며 "구의회에는 '예스맨'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