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노동시장과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유럽의 병자’로 불려온 이탈리아가 노동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우파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좌파 정당이 추진한 기본소득 격인 ‘시민소득’을 도입 4년 만에 혜택과 기간을 대폭 줄이고, 계약직 고용 조건도 완화해 기업에 단기계약 고용의 길을 넓혀주는 노동개혁 시행령을 의결했다. 18~59세 빈곤층의 시민소득을 현재 가구당 월평균 550유로(약 81만원)에서 내년 1월부터 월 350유로(약 51만원)로 줄이고, 수령 기간도 최대 12개월로 제한했다. 기업이 12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단기계약직 고용을 더 수월하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멜로니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시민소득이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빈곤을 고착화하는 현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다. 시민소득이 막대한 예산 소요 때문에 ‘재정 블랙홀’이 되면서 교육 등 다른 분야에 쓸 예산 부족도 심화하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19년 134.1%에서 시민소득 도입 후인 2020년 154.9%로 뛰었다. 2021년 15~29세 청년층 중 구직을 단념한 니트족은 23.5%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시민소득을 개혁하고 있다”는 멜로니 총리의 발언은 한국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제1야당 대표는 총선을 1년 앞두고 지난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활용한 ‘기본 시리즈’를 다시 꺼내 들었다. 성인 누구나 1000만원까지 저금리로 대출받게 하는 기본금융을 시작으로 기본주거, 기본소득을 줄줄이 추진하고 있다. 거대야당이 무소불위의 힘자랑을 하는 판이어서 총선 전 입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근로 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쉽지 않다. 이러다가 청년층과 저소득층을 무위도식하게 만들어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 ‘한국판 병자’라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노동개혁도 시작부터 노동단체의 극단적 ‘주 69시간 프레임’ 선동에 걸려 지지부진하다. ‘일하지 않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이탈리아의 노동개혁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