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지분 1.27%를 보유한 영국 투자회사 실체스터인터내셔널인베스터즈가 최근 한전에 서한을 보내 전기요금 인상 지연에 항의했다. 실체스터는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아 대규모 적자를 내는데도 왜 요금을 올리지 못하는가”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한전은 외국인 주주의 잇따른 항의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국내에서 봐도 사실 할 말이 없는 항의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설명해도 해외 주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실체스터의 항의는 ‘3류 정치’가 왜곡한 전기요금 문제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대표 공기업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칫 한국의 모든 공기업과 시장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스스로 상품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자가 계속 돈을 묻어둘 리 없다. 5년 전만 해도 30%에 육박했던 한전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14.4%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한전은 지난해 32조원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약 5조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에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겹쳤는데도 원가를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요금 인상을 계속 미루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사실상 투자 불능 상태에 빠진 한전의 부실은 발전 공기업, 민간 발전사, 협력업체 등으로 전이돼 전력 생태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송·배전 등 전력망 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블랙아웃(대정전)이라도 발생한다면 국내 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올해 들어 8조원어치 이상 발행된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의 심화도 예사 문제가 아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조만간 전기요금 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곧 요금 인상안이 나오긴 할 것이다. 여당이 여기에 계속 어깃장을 놓아선 곤란하다. 전기요금 문제의 시작은 전 정부지만, 이제부터는 현 정부 책임이 된다. 우리가 누리는 재화와 서비스엔 합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경제의 기본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