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ESG 경영과 젠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상장기업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 선임이 증가했다. 이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한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ESG 경영’ 중 지배구조 부문 강화를 위한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ESG 경영이 기업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게 된 것은 자본시장의 글로벌 큰손들 영향이 크다. 기업에 대한 투자 의사를 결정하면서 재무적 성과만 고려하던 전통적 방식과 달리, 기업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요소를 주요 투자지표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18년 “앞으로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최근 세계 2위 규모의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일본 상장사의 경영진 선임안에는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최근 여성 임원을 전진 배치하거나 이사회에 여성 이사를 선임하는 국내 기업이 늘고 있다. 대기업에서 내부 인재가 대표이사에 오른, 소위 ‘유리천장’을 깬 여성 CEO도 등장했다.

ESG 경영이 트렌드가 되다 보니 국내 주요 로펌도 ‘ESG 전담팀’을 구성해 기업들의 ESG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각 사업 분야의 ESG 이슈에 대한 효율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점차 확대되는 ESG 법률서비스 수요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필자는 문득 ‘ESG 전담팀’을 구성해 기업 고객의 ‘ESG 경영 실천’과 관련된 다양한 법률자문을 수행하고 있는 국내 주요 로펌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측면에서 ESG 경영 평가를 하면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한 단체에서 2020년 국내 20개 대형 로펌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소속 변호사(어소시에이트) 중 여성 변호사 비율은 36.95%고, 파트너 변호사 중 여성 변호사의 비율은 12.31%였다. 그러나 로펌 내에서 경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여성 변호사(임원) 숫자는 5%에 불과하고, 국내 상위 10대 로펌의 경영대표 중 여성 변호사는 단 2명이다.

로펌도 기업의 한 형태이므로 ESG 경영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의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이 로펌을 선택하는 주요 지표의 하나로 국내 로펌의 ESG 평가 점수를 활용하게 된다면 로펌의 지배구조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