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찰스 3세(74) 국왕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찰스 3세는 6일(현지시간) 10시 20분께 대관식이 열리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기 위해 아내 커밀라(75) 왕비와 함께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나섰다.

찰스 3세가 왕관을 쓰는 것은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된 지 무려 65년 만이자, 지난해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직후 왕위를 승계한 지 8개월 만이다. 대관식이 열리는 건 무려 70년 만으로, 이날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는 2km 구간은 '왕의 행렬'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관의식은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신에게 찰스 3세를 국왕으로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이 서약을 하고 성유를 바른 뒤 왕관을 쓰면, 성직자와 왕족·귀족들이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서 나는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며 "나는 하나님 앞에서 개신교 신자이며, 개신교 신자에게 왕위 승계를 보장하는 법률의 의도에 따라, 법에 따라 내가 가지는 권능을 다해 이 법률을 지지하고 지켜낼 것을 엄숙하고 성실하게 고백하고, 간증하고, 선언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와 달리 "모든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새로 추가됐다.

이어 그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당신의 모든 자녀들과 모든 믿음에 모든 믿음과 신앙에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온유함의 길을 찾아내고 평화의 길로 이끌릴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했다.


찰스 3세는 성유를 바르는 도유식에 이어 무게가 2.23kg에 달하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썼다. 성 에드워드 왕관은 순금 틀에 루비, 자수정, 사파이어 등 보석 444개가 박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많은 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3세가 검, 보주(orb), 반지 등 왕의 상징 물품을 전달받자 마지막으로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 에드워드 왕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줬다. 그러자 "신께서 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라는 말과 함께 수도원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70년 만에 치러진 이번 대관식에는 국가원수급 약 100명을 포함해 세계 203개국의 대표가 초청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내 질 바이든 여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이 참석했으며, 우리 정부 대표로는 한덕수 총리가 자리했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대관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세금으로 치르는 대관식 비용이 1억 파운드(17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경제 불황, 물가상승 등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1억 파운드에 달하는 큰돈을 국민이 지불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비용은 약 157만 파운드로 추정되는데,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600만 파운드로 추산된다. 찰스 3세의 대관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때보다 약 2배의 비용이 투입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비해 기간도 짧고 참석자도 줄이는 등 간소하게 계획됐으나, 비용은 과거보다 증가했다.

대관식 직전에는 군주제 반대 시민단체인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가 트래펄가 광장에서 시위대가 사용할 '내 왕이 아니다(#NotMyKing)'라고 쓰인 플래카드 등을 준비하던 중 체포됐다.


앞서 그는 1억파운드도 보수적으로 추정한 비용이라고 지적하며 "납세자가 지출하기에는 지나친 금액이다. 한 사람을 위한 퍼레이드에 (1억 파운드가) 사용되기보다 공공 서비스, 노숙자, 빈곤 등에 사용된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 이후 '불륜녀' 비난을 받았던 커밀라도 대관식을 계기로 왕비 호칭을 얻게 됐다. 찰스와 커밀라는 과거 연인 사이였으나 헤어졌고, 이후 커밀라는 찰스의 친구이기도 한 앤드루 파커 볼스와 1973년 결혼했다. 찰스 역시 1981년 어린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다. 하지만 커밀라는 1995년 이혼했고, 찰스와 다이애나빈도 1996년 갈라섰다. 이후 두 사람은 2005년 결혼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