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나…위협받는 캐나다의 민주주의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캐나다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의원내각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민주적인 선거로 연방의회와 주·시의회를 구성하는 전통이 확립돼 있다.

시사잡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2월에 발표한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캐나다는 10점 만점에 8.88점으로 12위에 올랐다.

참고로 한국은 8.03점으로 24위다.

이런 캐나다에서 최근 민주주의 시스템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됐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이 캐나다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올해 초 현지 언론이 공개한 캐나다보안정보국(CSIS) 비밀문건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9년과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야당 보수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집권당인 자유당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여당인 자유당도 중국에 대해선 원칙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보수당이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인터넷을 통해 자유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했고, 중국계 기업을 동원해 자유당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자유당 후보 선거운동에 투입하기도 했다는 게 CSIS의 정보다.

실제 2021년 총선 결과는 여당인 자유당의 신승이었다.

과반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소수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중국이 자유당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더라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선거 당시 밴쿠버 주재 중국 총영사는 보수당 후보 2명을 낙선시키는 데 본인이 역할을 했다고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국의 캐나다 주권 침해 시도는 선거 개입에만 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중국 정보기관이 신장 위구르 등 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보수당 소속 마이클 청 연방 하원의원의 친인척 정보를 수집했다는 문서까지 공개됐다.

정치인 가족을 뒷조사하는 과정에는 캐나다 주재 중국 외교관까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미국과 영국 등 5개 영어권 국가의 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일원인 캐나다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위협받는 상황을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특히 중국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한국의 경우 이 같은 위협은 더 실제적이고 임박했을 수 있다.

[특파원시선]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나…위협받는 캐나다의 민주주의
중국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관영 선전기구 등을 동원해 저주성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외교부 당국자는 "국내 분열과 한미동맹의 이간을 획책하고 있는 불순한 의도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관영 선전기구를 통해 쏟아내는 각종 '막말'이나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퍼뜨리는 '아무말 대잔치성' 선동이 국내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한국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확한 분석으로 보인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중국이 선전·선동이나 여론전에 그치지 않고, 캐나다의 사례에서처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직접 움직일 가능성이다.

태평양 건너 캐나다의 선거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중국이 인접국가인 한국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할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원론적 발언을 놓고 중국이 "대만 문제로 장난하면 불타 죽을 것"이라고 대놓고 위협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뼈대이자 국민 주권의 핵심인 선거에 적대적인 외부 세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시나리오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고, 국민적 경각심을 제고하는 것은 역시 정치권이 발을 벗고 나서야 할 의무일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