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3년 4개월 만에 팬데믹 극복…韓 기술력 한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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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백신·치료제 개발 경쟁선 美·유럽에 밀려
'1192일.'
세계가 어둡고 긴 코로나19 팬데믹의 터널을 벗어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비상상황을 끝내면서 이 질환은 공식적으로 독감같은 '상시 유행 감염병(엔데믹)'이 됐다. 3년 넘게 전쟁을 치룬 세계에 '일상'을 선물한 것은 진단기술, 백신, 치료제 등 '과학'이었다. 미국 중국 등 각국 정부가 팬데믹 이후 '바이오 경제' 패권 전쟁에 뛰어든 이유다. 한국도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석에 참여한 영국 연구진들은 코로나19 백신이 없었다면 유행 초기 사망자가 지금보다 3배 정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신 접종을 통해 항체를 보유한 사람이 늘면서 코로나19가 심한 폐렴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신종 변이인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백신의 전파 차단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중증 환자를 줄이는 효과는 그대로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중증 질환 등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는 위험이 접종자보다 4~5배 높았다.
백신과 치료제는 WHO가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해제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됐다. 해제 발표와 함께 WHO는 "세계적으로 133억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이 투여됐다"며 "만 60세 이상 성인의 82%가 기본 접종을 마쳤다"고 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번지고 있지만 각국이 대응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각국은 앞다퉈 '바이오 경제' 육성책을 발표했다. 팬데믹을 계기로 바이오 기술 주권이 건강은 물론 사회 경제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일부터 중국·인도 의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한 '핵심의약품법'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인도가 의약품 수출을 제한하자 유럽에선 진통제, 항생제, 인슐린 등이 품귀현상을 겪었다. 이런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중국은 지난달 수출제한기술목록에 세포복제, 유전자편집, 합성생물학기술 등 바이오의약기술을 추가했다. 바이오 기술 주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미국도 지난해 9월 자국 기술 기반 바이오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내용의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바이오경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지난해 6월 미국·영국에 이어 국산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보유한 세계 세번째 나라가 됐다. 2021년 9월 셀트리온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를 개발한 데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도 시판 허가를 받으면서다.
하지만 이들 두 제품 모두 상업적으론 성공하지 못했다. 렉키로나는 초기 유행 바이러스에 맞춘 '항체' 기반 치료제이기 때문에 변이가 잇따른 코로나19 치료엔 힘을 쓰지 못했다. 2021년 말 미국 머크(MSD)와 화이자가 변이에 상관없이 바이러스 복제 과정을 막아주는 먹는 약을 잇따라 출시했다.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는 시판 허가 다섯달 만인 지난해 2월 신규 공급이 중단됐다.
스카이코비원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등에서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한 데다 변이 예방력이 떨어져 1분기 451건을 접종하는 데 그쳤다. 화이자 모더나 등은 개발 기간이 짧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을 활용해 변이 맞춤형 백신을 계속 출시했지만 스카이코비원은 전통적 백신 개발 방식으로 개발돼 대응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위기 상황이 되자 바이오분야 기초체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팬데믹 이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정부가 mRNA 기술 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319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한국 정부 투입 비용은 105억원에 그쳤다.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진 것은 세계 104번째인 2021년 2월 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사망률을 기록한 것은 '과학의 힘'보다는 '인력 의존적' 의료시스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늦어진 백신 접종을 만회하기 위해 단기간에 접종률을 끌어 올리면서 사회적 부작용은 커졌다. '백신 부작용' 환자 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신뢰도가 무너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90%를 웃돈 국내 백신 신뢰도는 올해 48%로 급격히 떨어졌다. 조사대상 55개국 중 꼴찌인 파푸아뉴기니(46%) 바로 위 순위를 기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세계가 어둡고 긴 코로나19 팬데믹의 터널을 벗어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비상상황을 끝내면서 이 질환은 공식적으로 독감같은 '상시 유행 감염병(엔데믹)'이 됐다. 3년 넘게 전쟁을 치룬 세계에 '일상'을 선물한 것은 진단기술, 백신, 치료제 등 '과학'이었다. 미국 중국 등 각국 정부가 팬데믹 이후 '바이오 경제' 패권 전쟁에 뛰어든 이유다. 한국도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간 백신으로 1980만명 목숨 구해
7일 국제학술지 '란셋'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이 출시된 뒤 1년 간 세계에서 백신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은 1980만명이다.분석에 참여한 영국 연구진들은 코로나19 백신이 없었다면 유행 초기 사망자가 지금보다 3배 정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신 접종을 통해 항체를 보유한 사람이 늘면서 코로나19가 심한 폐렴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신종 변이인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백신의 전파 차단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중증 환자를 줄이는 효과는 그대로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중증 질환 등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는 위험이 접종자보다 4~5배 높았다.
백신과 치료제는 WHO가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해제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됐다. 해제 발표와 함께 WHO는 "세계적으로 133억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이 투여됐다"며 "만 60세 이상 성인의 82%가 기본 접종을 마쳤다"고 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번지고 있지만 각국이 대응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이오 패권 전쟁' 불 붙어
코로나19 팬데믹 후 각국은 앞다퉈 '바이오 경제' 육성책을 발표했다. 팬데믹을 계기로 바이오 기술 주권이 건강은 물론 사회 경제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일부터 중국·인도 의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한 '핵심의약품법'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인도가 의약품 수출을 제한하자 유럽에선 진통제, 항생제, 인슐린 등이 품귀현상을 겪었다. 이런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중국은 지난달 수출제한기술목록에 세포복제, 유전자편집, 합성생물학기술 등 바이오의약기술을 추가했다. 바이오 기술 주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미국도 지난해 9월 자국 기술 기반 바이오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내용의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바이오경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韓 피해 최소화했지만 과학기술 한계 확인
한국은 지난해 6월 미국·영국에 이어 국산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보유한 세계 세번째 나라가 됐다. 2021년 9월 셀트리온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를 개발한 데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도 시판 허가를 받으면서다.
하지만 이들 두 제품 모두 상업적으론 성공하지 못했다. 렉키로나는 초기 유행 바이러스에 맞춘 '항체' 기반 치료제이기 때문에 변이가 잇따른 코로나19 치료엔 힘을 쓰지 못했다. 2021년 말 미국 머크(MSD)와 화이자가 변이에 상관없이 바이러스 복제 과정을 막아주는 먹는 약을 잇따라 출시했다.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는 시판 허가 다섯달 만인 지난해 2월 신규 공급이 중단됐다.
스카이코비원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등에서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한 데다 변이 예방력이 떨어져 1분기 451건을 접종하는 데 그쳤다. 화이자 모더나 등은 개발 기간이 짧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을 활용해 변이 맞춤형 백신을 계속 출시했지만 스카이코비원은 전통적 백신 개발 방식으로 개발돼 대응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위기 상황이 되자 바이오분야 기초체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팬데믹 이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정부가 mRNA 기술 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319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한국 정부 투입 비용은 105억원에 그쳤다.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진 것은 세계 104번째인 2021년 2월 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사망률을 기록한 것은 '과학의 힘'보다는 '인력 의존적' 의료시스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늦어진 백신 접종을 만회하기 위해 단기간에 접종률을 끌어 올리면서 사회적 부작용은 커졌다. '백신 부작용' 환자 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신뢰도가 무너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90%를 웃돈 국내 백신 신뢰도는 올해 48%로 급격히 떨어졌다. 조사대상 55개국 중 꼴찌인 파푸아뉴기니(46%) 바로 위 순위를 기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