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2라인. 작업자들이 완성된 아이오닉 5의 품질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2라인. 작업자들이 완성된 아이오닉 5의 품질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위기 때마다 글로벌 위상이 격상되는 회사.’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국 등 신흥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판매 5위로 성장한 데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약진하며 글로벌 3위로 도약한 데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강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글로벌 완성차업계에서 유일하게 수직계열화한 밸류체인, 빠르고 유연한 차량 개발, 선진 및 신흥 시장 동시 개척 등이다. 2026년에는 글로벌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반도체 소자 설계 변경 ‘신의 한 수’

GM·포드 문 닫을때…현대차, 반도체 설계변경으로 판 뒤집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대부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들은 자동차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판단하고 반도체 주문량을 대폭 줄였다. 이는 큰 오판이었다. 코로나19 ‘보복소비’ 수요가 예상외로 폭발한 것이다. 이들 업체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탓에 2021년 내내 공장 가동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야 했다.

현대차그룹은 달랐다. 2020년 국내외 공장 가동을 지속하는 등 생산력을 유지한 덕분에 2021년 수요 급증에 올라탔다. 현대차 역시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긴 했지만 174개에 달하는 대체 소자를 개발해 유연하게 대응했다. 이때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완성차 생산 공정을 수직계열화한 게 빛을 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올해의 선구자’로 선정된 뒤 인터뷰에서 “수직계열화가 왜 필요한지는 공급망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깡통 차’ 대신 ‘제값 받는 차’로

현대차그룹 대약진의 또 다른 비결은 지난 3년간 가장 크게 성장한 미국 시장의 상품 전략 변경이다. 현대차·기아는 이전까지 옵션 없는 ‘깡통 차’로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본 모델에도 스마트크루즈컨트롤 등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을 적용해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2018년 말 미국에 출시한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와 텔루라이드가 그 시작이었다. 두 모델은 현대차·기아의 전체 평균판매단가(ASP)를 확 끌어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높인 초기에는 판매가 어려웠지만 소비자 만족도가 향상되면서 선순환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재고가 부족해지면서 미국 내 수익성이 떨어지는 리스, 영업용 차량 등 상업용 판매 비중을 25%에서 한 자릿수로 낮춘 것도 주효했다. 상업용 물량은 초기 판매 목표 달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2~3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대규모로 중고차 시장에 풀리면서 중고차 가치가 떨어지는 역효과를 낸다.

미국·유럽 선진 시장 집중 공략

GM·포드 문 닫을때…현대차, 반도체 설계변경으로 판 뒤집었다
2010년대 초반 현대차그룹이 한 단계 도약한 것은 중국 시장 선전 덕분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위기에 빠진 것도 중국 시장 부진 때문이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시작되면서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약진하며 오히려 더 성장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12년 8.7%에서 지난해 10.6%로 높아졌다. 서유럽에선 같은 기간 6.2%에서 9.4%로 올라갔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더 이상 신흥시장 중심이 아니라 선진시장에서 중대형 세그먼트를 판매하는 업체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현대차그룹이 2026년 판매량 917만 대로 글로벌 1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