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은행 돈 잔치와 등 떠밀린 사회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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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대금리 차이 커 불만인데
내민 건 저소득층 지원카드
은행 사회공헌 지속해왔지만
눈치보기로 철학과 뚝심 부족
저출산·고령화 고민도 담아야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前 한국은행 부총재보
내민 건 저소득층 지원카드
은행 사회공헌 지속해왔지만
눈치보기로 철학과 뚝심 부족
저출산·고령화 고민도 담아야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前 한국은행 부총재보
요즘 은행권 처지는 딱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발단은 ‘돈 잔치’였다. 2022년 5대 금융그룹 순이자 이익이 50조원에 육박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덕분이다. 은행들은 기본급의 300~4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퇴직하면 6억~7억원을 두둑이 쥐여줬다. 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린 차입자는 이자 빚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연 3%이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까지 급등했다. 이 판에 성과급 파티를 벌인 것이다. 여론 반응이 싸늘해진 이유다.
대통령의 질타가 추상같다.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이에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급기야 은행권이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려졌다.
“이익 가운데 3분의 1은 주주 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준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국민과 금융소비자 몫이다.” 금융감독원장 지론이다. 성과급을 더 받으려면 사회공헌도 그만큼 하라는 주문이다.
부랴부랴 은행권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3년간 10조원을 내놓겠다는 읍소다. 하지만 여론과 감독당국을 의식해 급조한 탓에 아귀가 안 맞는다. 금융소비자의 불만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은 저소득계층 지원 카드를 내밀었다. 집값이 오른 곳은 서울 강남지역인데 지방에 주택 공급을 더 늘리겠다는 식이다.
은행이 돈놀이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감독당국이 하도 몰아세우니 대놓고 말을 못 했을 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일찌감치 2022년도 사회공헌활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은행권은 조심스럽다. 2022년 결과를 올해 7~8월에야 공개한다. 선행을 묵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금의야행(錦衣夜行)이다.
가장 최근 자료가 ‘2021년 은행 사회공헌 활동 보고서’(은행연합회)다. 6대 분야 사회공헌 실적이 망라돼 있다. 서민금융, 지역사회·공익, 학술·교육, 문화·예술·체육, 환경, 글로벌 기여 등이다. 2021년 사회공헌 총액은 1조617억원이다. 하지만 몇 군데 아쉬운 점이 보인다.
첫째, 사회공헌 종류와 내역이 은행별로 엇비슷하다. 6대 사회공헌 분야를 금융감독원이 미리 지정한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4대 시중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 사회공헌 금액이 당기순이익의 7% 내외다. 상대방 눈치를 보며 금액을 가늠질한 흔적이 아닐까. 은행 고유의 철학과 개성이 담긴 차별화가 실종됐다.
둘째, 생색내기다. 한 은행의 사회공헌백서는 수많은 사업의 수혜자를 일일이 밝힌다. ‘환경’을 덧칠해 사회공헌·환원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녹색금융이 한 예다. 저탄소·친환경 분야 대출을 늘리면 사회공헌 점수도 받고 수익도 오른다. 공연·전시회 후원도 이미지 개선을 통한 수익 늘리기 방편이다. 소외된 분야를 오랜 기간 묵묵히 지원하는 뚝심과 인내심이 부족하다.
셋째,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한국 경제 최대 난제다. 은행은 업무 처리를 비대면 방식(인터넷뱅킹 등)으로 바꿨다. 명분은 비용 절감과 업무 혁신이다. 지방 점포 수도 줄였다. 지점 폐쇄로 고령층이 겪는 금융 소외가 심각하다. 낙후지역과 인구 감소 지역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배려, 은행권이 사회 통합에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길이다. 앞에서 금융 포용을 외치고 뒤로는 금융 배척을 꾀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불만이다. 은행별 ‘비교공시’를 구상 중이다. 이런 식으로 경쟁을 부추기면 획일적 반응을 낳을 수 있다. 인사동 화랑이 몽땅 은행권의 전시관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춥고 배고픈 예술인들을 도우려는 취지가 퇴색하지 않을까.
미국 16위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3월 파산했다. SVB가 2022~2026년 계획한 사회공헌 지원금 112억달러도 물거품이 됐다. 14위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5월 1일 JP모간은행에 팔렸다. 퍼스트리퍼블릭의 2021년 사회공헌 지원액은 47억달러(약 6조원)다.
은행 파산 시 손실은 주주 몫이다. 자본주의 게임 룰이다. 그런데 도움을 기다리는 취약계층이 함께 고통받는다. 은행이 계속 성장하는 것, 사회공헌의 출발점이다.
대통령의 질타가 추상같다.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이에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급기야 은행권이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려졌다.
“이익 가운데 3분의 1은 주주 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준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국민과 금융소비자 몫이다.” 금융감독원장 지론이다. 성과급을 더 받으려면 사회공헌도 그만큼 하라는 주문이다.
부랴부랴 은행권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3년간 10조원을 내놓겠다는 읍소다. 하지만 여론과 감독당국을 의식해 급조한 탓에 아귀가 안 맞는다. 금융소비자의 불만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은 저소득계층 지원 카드를 내밀었다. 집값이 오른 곳은 서울 강남지역인데 지방에 주택 공급을 더 늘리겠다는 식이다.
은행이 돈놀이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감독당국이 하도 몰아세우니 대놓고 말을 못 했을 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일찌감치 2022년도 사회공헌활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은행권은 조심스럽다. 2022년 결과를 올해 7~8월에야 공개한다. 선행을 묵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금의야행(錦衣夜行)이다.
가장 최근 자료가 ‘2021년 은행 사회공헌 활동 보고서’(은행연합회)다. 6대 분야 사회공헌 실적이 망라돼 있다. 서민금융, 지역사회·공익, 학술·교육, 문화·예술·체육, 환경, 글로벌 기여 등이다. 2021년 사회공헌 총액은 1조617억원이다. 하지만 몇 군데 아쉬운 점이 보인다.
첫째, 사회공헌 종류와 내역이 은행별로 엇비슷하다. 6대 사회공헌 분야를 금융감독원이 미리 지정한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4대 시중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 사회공헌 금액이 당기순이익의 7% 내외다. 상대방 눈치를 보며 금액을 가늠질한 흔적이 아닐까. 은행 고유의 철학과 개성이 담긴 차별화가 실종됐다.
둘째, 생색내기다. 한 은행의 사회공헌백서는 수많은 사업의 수혜자를 일일이 밝힌다. ‘환경’을 덧칠해 사회공헌·환원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녹색금융이 한 예다. 저탄소·친환경 분야 대출을 늘리면 사회공헌 점수도 받고 수익도 오른다. 공연·전시회 후원도 이미지 개선을 통한 수익 늘리기 방편이다. 소외된 분야를 오랜 기간 묵묵히 지원하는 뚝심과 인내심이 부족하다.
셋째,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한국 경제 최대 난제다. 은행은 업무 처리를 비대면 방식(인터넷뱅킹 등)으로 바꿨다. 명분은 비용 절감과 업무 혁신이다. 지방 점포 수도 줄였다. 지점 폐쇄로 고령층이 겪는 금융 소외가 심각하다. 낙후지역과 인구 감소 지역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배려, 은행권이 사회 통합에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길이다. 앞에서 금융 포용을 외치고 뒤로는 금융 배척을 꾀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불만이다. 은행별 ‘비교공시’를 구상 중이다. 이런 식으로 경쟁을 부추기면 획일적 반응을 낳을 수 있다. 인사동 화랑이 몽땅 은행권의 전시관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춥고 배고픈 예술인들을 도우려는 취지가 퇴색하지 않을까.
미국 16위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3월 파산했다. SVB가 2022~2026년 계획한 사회공헌 지원금 112억달러도 물거품이 됐다. 14위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5월 1일 JP모간은행에 팔렸다. 퍼스트리퍼블릭의 2021년 사회공헌 지원액은 47억달러(약 6조원)다.
은행 파산 시 손실은 주주 몫이다. 자본주의 게임 룰이다. 그런데 도움을 기다리는 취약계층이 함께 고통받는다. 은행이 계속 성장하는 것, 사회공헌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