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도 빈민촌도 … 온 세상이 나의 갤러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가진 작가다. 내겐 온 세상의 벽이 모두 전시장이니까.”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 있다. 전쟁터, 난민촌, 분쟁지역이 그렇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이런 곳에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는 작가가 있다.

‘세상을 바꾸는 사진가’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JR(제이알·40)이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면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찍는다. 그렇게 만든 작품은 미술관이 아니라 도심 곳곳에 있는 건물 외벽 등에 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갤러리를 가진 작가’란 별명이 붙었다.

JR이 20년의 발자취가 담긴 작품 140여 점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서울 잠실동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JR: 크로니클스’전을 통해서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쟁터도 빈민촌도 … 온 세상이 나의 갤러리다"
○“우리는 만들어진 세상에 산다”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 사이에 태어난 JR이 ‘작가’ 타이틀을 처음 단 건 13세 때인 1996년이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그라피티를 그렸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사진 작가로 변신하게 됐다. 2001년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 우연히 주운 삼성 카메라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이번 전시에선 그가 사진의 세계에 입문했던 ‘그때 그 시절’의 작품부터 2019년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사진가 JR’을 세상에 처음 알린 작품은 전시장 초입에 진열됐다. ‘세대의 초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진인 ‘브라카쥐, 래드 리’다. 사진 한가운데 건장한 흑인 남성이 마치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JR은 “유색인종이란 이유만으로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기처럼 보이지 않느냐”며 “미디어가 만든 편향된 인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갇혀 살고 있는지 꼬집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 속 남성은 20년 후 영화 ‘레 미제라블’의 감독이 됐다.

JR은 이 작품을 무단으로 거리에 전시했다. 파리시장으로부터 고소당했고, 가명을 쓰며 숨어다녀야 했다. 그럴수록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한층 더 불타올랐고 세상을 바꾸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JR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리 사진 전시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2007년 진행한 ‘페이스 투 페이스’도 미디어가 만든 가짜 인식을 꼬집는 또 다른 프로젝트다. JR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지역을 오가며 같은 직업을 가진 양국 사람들의 얼굴을 찍었다. 그러고는 사진을 초대형으로 출력한 뒤 두 국가를 나누는 벽에 나란히 걸었다. 사진을 걸기 전에 두 나라 사람들은 “생김새로 우리나라 사람인지 판별할 수 있다”고 단언했지만, 막상 사진이 걸리자 누구도 자신 있게 구분하지 못했다. 원수건, 친구건 우리 모두는 서로 닮았다는 메시지를 사진을 통해 전한 것이다.

○아시아 첫 개인전…신작도 내놔

첫 한국 나들이를 기념하기 위해 JR은 서울을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2016년부터 해온 착시효과를 이용한 초대형 설치 작업 ‘아나모포시스’의 연장선이다. 앞서 그는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찾아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 작품의 소재는 롯데타워에서 내려다본 한강이다. 롯데뮤지엄 한쪽 창에 설치된 이 작품은 갤러리 내부와 바깥 세계가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한 착시효과를 준다. JR은 “서울은 여러 레이어(층)가 겹겹이 쌓인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관객이 한강 풍경을 담은 신작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각적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과 설치미술, 그라피티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한 작가답게 전시도 다채롭게 꾸몄다. 영상, 사진, 소리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설치된 녹음기를 눌러 전시 소감을 녹음하면 그 파일이 JR에게 전달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8월 6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