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유코 여사와 함께 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을 찾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유코 여사와 함께 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을 찾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8일 오전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호젓한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이 한순간 검은색으로 도배됐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과 줄을 지어 들어선 검은색 승용차 때문이었다.

차에서 내린 이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7일 남편을 따라 한국을 찾은 기시다 여사는 이날 김 여사와 함께 리움을 찾았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당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모인 각국 정상 부인들. /한경DB
2010년 G20 정상회의 당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모인 각국 정상 부인들. /한경DB
한국에 온 해외 명사가 리움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방한한 ‘세계 1위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빡빡한 2박3일 일정에도 짬을 내 리움에 들렀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땐 세계 각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리움에 다 함께 모이기도 했다. 리움 관계자는 “비공개 일정으로 미술관을 찾는 국빈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왜 해외 VIP들이 한국에서 들를 미술관을 딱 하나 고를 때 리움을 택할까. 리움이 ‘국가대표’ 전시 시설인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보다 한 수 위인 걸까.

자타 공인 ‘한국 최고 컬렉션’

‘한국에서 뮤지엄을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리움에 가야 한다’는 건 미술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상식으로 통한다. 삼성가(家)의 고미술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고미술 컬렉션 상설전’ 때문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부터 시작해 고 이건희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까다로운 안목으로 수십 년에 걸쳐 모은 것이다.

리움은 이곳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예술품을 1년 내내 전시한다. 시대와 장르별로 가려 뽑은 안목과 솜씨가 탁월하다는 평가다. 도자기, 서화, 민화, 목가구, 금속공예 등 다양한 예술품 160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국보 6점과 보물 4점도 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세계 모든 사람이 아는 삼성가가 대대로 수집한 컬렉션이라는 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대표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해외 VIP들이 끌리는 것 같다”고 했다. 리움의 컬렉션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립 기관보다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평론가는 “서울에서 한국의 역사를 담은 대표 예술품을 전시했다고 할 만한 상설전은 사실상 리움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수준급’ 기획전·건축물도 ‘볼거리’

고미술품 상설전이 한국의 전통미를 안겨주는 전시라면, 기획전은 지금 한국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곳이다. 작가와 작품의 ‘이름값’을 통해 한국 미술의 위상을, 작품 배치와 동선 등 전시 구성에서는 미술관의 서비스 능력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WE’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이 단적인 예다. 두 전시 모두 평일 오전 입장 전부터 ‘오픈런’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인기다. 리움 관계자는 “아르노 회장도 카텔란과 백자 기획전을 모두 둘러보고 갔다”고 귀띔했다.

리움은 ‘재료’(작품)의 품질이나 ‘요리’(전시 구성) 솜씨 모두 해외 일류 미술관에 버금가는 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리움의 힘은 국내외 네트워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백자전 전시 작품 중에는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6개 기관에서 빌려온 것들이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리움의 또 다른 매력은 건물 그 자체다. 총 2만8300㎡ 규모로 세워진 리움은 마리오 보타(스위스), 장 누벨(프랑스), 렘 쿨하스(네덜란드) 등 거장급 건축가 세 명이 함께 설계했다.

이선아/성수영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