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가졌다" JR의 20년 담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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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롯데뮤지엄 '제이알 : 크로니클스'전
그래피티 작가였던 프랑스 사진가
우범지역, 전쟁터, 난민촌 등 찾아
'세상을 바꾸는 사진가' 별명
파리 지하철서 우연히 주운 '삼성카메라'로 시작
140여점의 작품 들고 아시아 최초 개인전
그래피티 작가였던 프랑스 사진가
우범지역, 전쟁터, 난민촌 등 찾아
'세상을 바꾸는 사진가' 별명
파리 지하철서 우연히 주운 '삼성카메라'로 시작
140여점의 작품 들고 아시아 최초 개인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가졌습니다. 바로 온 세상의 벽들이죠."
그 누구도 선뜻 가기 꺼려지는 곳들이 있다. 우범지역, 전쟁터, 난민촌, 분쟁지역과 같은 장소들이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자신만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 그 사람들에게 애정의 시선을 보내는 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 작가 제이알(JR·40)이다.
그는 세상을 떠돌며 꾸밈없이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을 찍는다. 그리고는 미술관이 아닌 도시의 건물 외벽, 지붕, 기차 등 거리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전시한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갤러리를 가진 작가, 제이알이 20년의 발자취가 담긴 작품 140여점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제이알:크로니클스'전을 통해서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알은 열 세살부터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하다 2001년 파리 지하철에서 우연히 삼성 카메라를 주우며 사진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사진의 세계에 입문했던 '그 때 그 시절'의 작품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2019년작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사진가 제이알'을 세상에 처음으로 각인시킨 작품은 전시장 초입에 가장 크고 강렬하게 전시되어 있다. 바로 '세대의 초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진인 '브라카쥐, 래드 리'. 사진 속 한가운데엔 건장한 흑인 남성이 마치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제이알은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기처럼 위협적인 존재처럼 보인다"며 "이 사진을 통해 대중들이 얼마나 편향된 미디어가 만들어 낸 잘못된 인식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꼬집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 속의 남성은 20년 후 영화 '레 미제라블'의 감독이 됐다.
제이알은 이 작품을 무단으로 거리에 전시한 후 파리 시장에게 고소를 당했고, 가명을 쓰며 숨어다녀야 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그는 예술 활동이 두려워지기는커녕, 세상을 바꾸는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거리 사진 전시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7년 진행한 '페이스 투 페이스'도 미디어가 만든 가짜 인식을 꼬집는 또 다른 프로젝트다. 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오가며 동일한 직업을 가진 양국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초대형으로 출력한 뒤, 두 국가를 분리하고 있는 벽에 나란히 걸었다. 이 작업을 통해 전쟁으로 절대 만날 수 없는 팔레스타인 교사와 이스라엘 교사가 작품으로나마 어깨를 맞댔다. 국가 간 통행이 불가능하기에 오직 뉴스 혹은 미디어로만 서로를 접했던 사람들은 사진만 보고서는 누가 어디 사람인지 전혀 구분해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시민들 모두가 "생김새만으로도 서로를 구분지을 수 있다"고 단언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이 작품으로 제이알은 다시 한 번 미디어가 심은 인식이 얼마나 시민들의 머릿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가에 대해 세상에 소리쳤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제이알은 서울을 주제로 한 신작도 선보였다. 2016년부터 선보여 온 착시효과를 이용한 초대형 설치작업 '아나모포시스'의 연장선이다. 앞서 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긴자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찾아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을 위한 작품으로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롯데타워에서 내려다 본 한강을 소재로 삼았다. 롯데뮤지엄 한쪽 창에 설치된 이 작품은 관객의 착시를 불러일으켜 갤러리 내부와 바깥 세계가 마치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제이알은 "서울은 때로는 위협적이게도 느껴지지만, 여러 레이어(층)이 겹겹이 쌓여진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관객도 한강 풍경을 담은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각적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과 설치미술, 그래피티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거쳐 온 작가인만큼 전시 방식도 다양하다. 영상, 사진, 소리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퇴장하는 길에는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다. 관객이 전시 소감을 녹음하면, 그 녹음 파일은 고스란히 제이알에게 전달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그 누구도 선뜻 가기 꺼려지는 곳들이 있다. 우범지역, 전쟁터, 난민촌, 분쟁지역과 같은 장소들이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자신만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 그 사람들에게 애정의 시선을 보내는 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 작가 제이알(JR·40)이다.
그는 세상을 떠돌며 꾸밈없이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을 찍는다. 그리고는 미술관이 아닌 도시의 건물 외벽, 지붕, 기차 등 거리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전시한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갤러리를 가진 작가, 제이알이 20년의 발자취가 담긴 작품 140여점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제이알:크로니클스'전을 통해서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알은 열 세살부터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하다 2001년 파리 지하철에서 우연히 삼성 카메라를 주우며 사진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사진의 세계에 입문했던 '그 때 그 시절'의 작품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2019년작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사진가 제이알'을 세상에 처음으로 각인시킨 작품은 전시장 초입에 가장 크고 강렬하게 전시되어 있다. 바로 '세대의 초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진인 '브라카쥐, 래드 리'. 사진 속 한가운데엔 건장한 흑인 남성이 마치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제이알은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기처럼 위협적인 존재처럼 보인다"며 "이 사진을 통해 대중들이 얼마나 편향된 미디어가 만들어 낸 잘못된 인식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꼬집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 속의 남성은 20년 후 영화 '레 미제라블'의 감독이 됐다.
제이알은 이 작품을 무단으로 거리에 전시한 후 파리 시장에게 고소를 당했고, 가명을 쓰며 숨어다녀야 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그는 예술 활동이 두려워지기는커녕, 세상을 바꾸는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거리 사진 전시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7년 진행한 '페이스 투 페이스'도 미디어가 만든 가짜 인식을 꼬집는 또 다른 프로젝트다. 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오가며 동일한 직업을 가진 양국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초대형으로 출력한 뒤, 두 국가를 분리하고 있는 벽에 나란히 걸었다. 이 작업을 통해 전쟁으로 절대 만날 수 없는 팔레스타인 교사와 이스라엘 교사가 작품으로나마 어깨를 맞댔다. 국가 간 통행이 불가능하기에 오직 뉴스 혹은 미디어로만 서로를 접했던 사람들은 사진만 보고서는 누가 어디 사람인지 전혀 구분해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시민들 모두가 "생김새만으로도 서로를 구분지을 수 있다"고 단언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이 작품으로 제이알은 다시 한 번 미디어가 심은 인식이 얼마나 시민들의 머릿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가에 대해 세상에 소리쳤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제이알은 서울을 주제로 한 신작도 선보였다. 2016년부터 선보여 온 착시효과를 이용한 초대형 설치작업 '아나모포시스'의 연장선이다. 앞서 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긴자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찾아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을 위한 작품으로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롯데타워에서 내려다 본 한강을 소재로 삼았다. 롯데뮤지엄 한쪽 창에 설치된 이 작품은 관객의 착시를 불러일으켜 갤러리 내부와 바깥 세계가 마치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제이알은 "서울은 때로는 위협적이게도 느껴지지만, 여러 레이어(층)이 겹겹이 쌓여진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관객도 한강 풍경을 담은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각적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과 설치미술, 그래피티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거쳐 온 작가인만큼 전시 방식도 다양하다. 영상, 사진, 소리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퇴장하는 길에는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다. 관객이 전시 소감을 녹음하면, 그 녹음 파일은 고스란히 제이알에게 전달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