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적용대상 돼도 대출·경매 지원 불투명…LH 매입도 소외
경매에선 찬밥·떠안으면 과태료…피해지원 사각지대 '근생빌라'
"지난 1년간 해결책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여전히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특별법도 저에겐 먼 얘깁니다.

"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유모(31) 씨는 빌라·오피스텔 1천여채를 소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임대업자 김모(42) 씨로 인한 피해자다.

2020년 5월, 전용면적 20.12㎡ 주택을 1억6천만원에 전세로 얻었다.

겉보기엔 멀쩡한 6층짜리 빌라의 1층 주택이었다.

유씨가 전세 계약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집주인은 이른바 '빌라왕' 김씨로 바뀌었다.

만기 때 보증금을 내달라는 유씨의 애타는 전화와 문자에 김씨는 '얼마에 사실 건데요?'라고 답했다.

집주인 김씨가 보증금을 못 내주겠으니 2천만원을 얹어 인수해가라고 했지만, 사회 초년생인 유씨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연장했다.

법률 상담을 받던 중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사는 집이 근린생활시설에 '원룸' 탈을 씌운 불법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씨는 "등기부등본만 봐선 알 수 없고, 건축물대장까지 떼어보니 주거용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전세 계약 때 공인중개사에겐 근린생활시설의 '근' 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았다면 불법이라는 의심이라도 했을 텐데, 은행도 속아 넘어갔다.

1억2천여만원을 대출받아 매달 월급의 3분의 1을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다.

경매에선 찬밥·떠안으면 과태료…피해지원 사각지대 '근생빌라'
◇ 저리·대환대출 지원 불투명
유씨처럼 소위 '근생빌라'라고 불리는 불법 건축물에 들어갔다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근린생활시설은 식당, 학원, 미용실처럼 주택가 가까이에 위치하는 상업 시설을 뜻한다.

전부 주거용인 건물보다 주차 공간을 적게 마련해도 되기 때문에 건물주들이 1∼2층을 근린생활시설로 등록해놓고 주거용으로 불법 개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같은 빌라 건물이어도 일부 층은 주택, 다른 층은 근린생활시설일 수 있어 외관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서울 은평구의 전세사기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임대인 A씨는 근생빌라를 주로 매입해 임대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이 불법 건축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각종 전세사기 지원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근린생활시설 피해자들은 저리 대출, 대환 대출과 경락 자금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불투명하다.

유씨는 "금리 상승으로 전세대출 이자가 갈수록 늘어 대환 대출이 절실하다"고 호소하지만, 근린생활시설 피해자를 금융지원 대상에 포함할지에 대한 정부 방침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경매에선 찬밥·떠안으면 과태료…피해지원 사각지대 '근생빌라'
◇ 경매시장서 찬밥신세…셀프낙찰 결심해도 이행강제금 '장애물'
근생빌라는 경매시장에선 찬밥신세다.

적법한 빌라도 새 주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행 강제금까지 감수하며 낙찰에 나서려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근생 불법 개조를 적발하면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건물 소유자에게 원상복구가 이뤄질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낙찰받아도 계속해서 주거용으로 쓰려면 해당 건물에 부과된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시세가 2억원인 주택이라면 10%인 2천만원이 매년 과태료로 부과된다.

억대의 전세대출이 있는 피해자들이 이런 금액까지 매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경락자금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불법 건축물의 경우 회수 가능성이 낮기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근생빌라는 공공 매입 가능성도 작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규상 불법 건축물은 매입임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주택 매입이 어려운 경우 피해자가 원하는 지역의 LH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피해자 단체에선 근생빌라와 신탁부동산 전세사기, 이중·삼중 전세계약 피해자 등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의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근린생활시설 피해자들은 똑같이 전세사기를 당했는데도 적용되는 정부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애초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안전판이 없는 상태인데 대출, 경매 지원까지 못 받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