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는 존재는 없다"…'어른이'도 위로하는 권정생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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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은서의 책이 머무는 집
안동 권정생어린이문학관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 소외된 이에 대한 사랑 그려
안동 권정생어린이문학관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 소외된 이에 대한 사랑 그려

권정생어린이문학관
경북 안동 일직면 성남길 119
화~일요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 당일 휴관
단체관람 시 사전예약 필요
경북 안동 일직면 성남길 119
화~일요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 당일 휴관
단체관람 시 사전예약 필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 냄새 나고, 사람들이 곁에 다가가기조차 꺼리는 존재. 1996년 출간된 그림책 <강아지똥>은 그런 강아지똥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강아지똥은 길 위에 덩그러니 버려진 채 태어났습니다. 새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데 "에그, 더러워!" 질색하며 도망가버려요.
이야기에는 이런 풍경이 그려집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데 어른이 된 후에 더 자주 생각나는 책들이 있습니다.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도 그런 이야기예요.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취업준비생, 사무실에 놓인 강아지똥이 된 것만 같은 신입사원….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이 그림책은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이'에게도 잔잔한 위로를 건넵니다.


권 작가는 1937년 도쿄 시부야 빈민가에서 징용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5남 2녀 중 여섯째. 거리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쌓아둔 헌책을 읽으며 글자를 익혔어요. 8살때는 미군의 폭격으로 집이 불타 사라지는 끔찍한 경험도 했습니다.
해방 후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어요. 1947년, 그러니까 권 작가 11살 무렵에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식구들이 모여 소작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다시 김천, 상주, 문경, 점촌 등 경북지역을 떠돌며 지냈고요.

국내 대표 아동문학 작가가 된 뒤에도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1983년 마을 청년들의 도움으로 빨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8평짜리 흙벽집을 지었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썼습니다. 이 집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언젠가 시인 김용락은 윤석중 시인이 이 집을 방문한 일화를 전해 듣고 시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을 쓰기도 했어요. 윤 시인이 직접 찾아가 전달한 새싹문학상 상패와 상금을 권 작가는 한사코 거절했다죠.

그렇게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세워졌고, 지금까지 북한 어린이 지원 등 어린이들을 위한 공익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가 한 자 한 자 손글씨로 미리 써둔 유언장에서는 가식 없는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게 쑥스럽다."
인세를 관리해줄 세 사람을 지정하면서 이런 설명을 달았죠. "최완택 목사.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5월 17일은 "만약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던 그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그는 유언장을 이렇게 마칩니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그가 바라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 외로운 어린이가 없는 세상, 환생을 꿈꿀 법한 세상은 언제쯤 올까요.
안동=구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