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잇단 설화와 ‘녹취 유출 파문’으로 논란을 빚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예정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심의를 8시간 앞두고다. 자진 사퇴라는 ‘정치적 해법’을 통해 징계 수위를 낮춰 총선 출마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태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논란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다.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사퇴 기자회견은 이날 아침 급작스레 결정됐다. 태 의원은 그동안 ‘정치적 공세’라며 사퇴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이날 오전 8시10분께 국회로 출근할 때만 해도 사퇴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입장 변화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1시간 정도 지난 뒤 취재진에게 사퇴 기자회견 일정을 공지했다.

태 의원이 자진 사퇴 결정을 내린 것은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그간 당내에선 태 최고위원이 당원권 1년 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에서 공천받아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는 길이 막힌다. 조직과 지역 기반이 없는 태 의원에게는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다.

이에 자진 사퇴를 통해 징계 수위를 낮춰 총선 출마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징계 수위가 당원권 정지 3개월이나 경고 정도로 낮아진다면 내년 1월 공천 신청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태 의원의 입장 변화에는 지난 8일 ‘자진 사퇴가 징계 수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황정근 윤리위원장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태 의원은 전날부터 깊은 고심에 빠졌다고 한다. 전날 밤에는 당 지도부가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아무 말 없이 퇴장했다. 태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이틀 동안 정말 많이 고민하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지지자들과 거취 문제에 대해 오늘 아침 다시 한번 얘기하다가 (사퇴 의사를) 밝히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총선 공천이 달린 만큼 태 의원으로선 실리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징계 대상에 함께 오른 김재원 최고위원은 현재까지 자진 사퇴에 선을 긋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등의 발언으로 징계 대상에 올랐다. 징계 수위는 당원권 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가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당 지도부는 김 최고위원의 거취를 주목하고 있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스스로 사퇴하지 않으면 최고위원직은 ‘사고’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사고 상태에선 후임 최고위원 선출이 불가능하다. 반면 태 의원 사퇴로 ‘궐위’가 된 최고위원 자리는 당헌·당규에 따라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에서 후임을 선출하게 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최소 당원권 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본인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퇴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