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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재의 새록새록] 보금자리 큰 숲을 잃은 장끼의 외침

도심 큰 숲 대규모 아파트 공사로 사라져…작은 숲에 갇혀 사는 듯
"꿔∼어엉, 꿩"
도심의 한 작은 숲에 있는 무덤 위에서 꿩은 아침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강원 강릉시 도심의 한 아파트 옆 작은 숲에 있는 무덤에는 요즘 하루에 몇번씩 나타나 힘찬 날갯짓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홰를 치는 장끼(꿩의 수컷)가 있다.

택지가 개발되고 남은 도심의 아주 작은 숲에는 꿩, 장끼가 산다.

도로 건너 앞산은 지금 장끼가 사는 숲보다 훨씬 큰 숲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공사로 숲이 대부분 사라졌다.

꿩이 왔다 갔다 날아다니며 마음껏 놀던 큰 숲이 사라진 것이다.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큰 숲을 잃고 주변 아파트와 건물에 사실상 갇혀 사는 작은 숲에는 오래된 무덤이 있고 그 무덤은 장끼의 유일한 놀이터다.

작은 숲에는 장끼가 맘 놓고 놀 공간이 그 무덤 외에는 거의 없다.

앞으로 조금만 나서면 아파트이고, 방향을 바꾸면 4차선 도로가 버티고 있으며, 작은 숲과 연결된 숲 뒤에는 큰 건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 앞의 작은 텃밭은 도로와 접하고 있어 차들이 드나들고 가끔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 나타나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장끼의 놀이터인 무덤이 백 년이 넘는 듯한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가려 있어 어느 정도 은폐가 되기도 한다.

큰 숲을 잃었지만, 작은 숲에서 나름대로 잘 적응해 나가는 듯 보인다.

장끼는 오전 7시를 전후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꼭 무덤 위에 올라가 몸단장하거나 아침 햇볕을 쬐는 등 비교적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곤 한다.

그러다 가끔 목을 길게 빼고 힘차게 날갯짓하며 소리를 크게 지른다.

양 날개를 펼치고 탁탁 몸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한다.

홰를 치는 장소는 대부분 무덤 위다.

그러고는 또다시 부리로 털을 고르는 등 몸단장을 하거나 별 움직임 없이 한참을 쉬기도 하고 그러다 또다시 있는 힘껏 홰를 친다.

홰를 칠 때의 그 날갯짓이 국내 조류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축에 속한다.

무덤 위에서의 홰치는 모습은 지금껏 내가 본 여러 종류의 새들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매력적이어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홰를 치며 지르는 그 소리는 영역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아파트 주민의 모닝콜이기도 하고 숲을 잃은 절규로도 들린다.

작은 숲의 장끼는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큰 숲 등 주변의 숲이나 들을 맘대로 다닐 수 없어 작은 숲에서 더 자주 반복 행동을 하는 듯 하다.

장끼는 한번 나타나면 2∼3분 있다가 금방 사라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30분가량 머물기도 하는 등 하루에도 몇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장끼가 한동안 홰를 치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창문을 열고 무덤을 내려다보며 꿩을 찾게 만든다고 한 아파트 주민은 전했다.

무덤 뒤 숲의 어느 곳인가에 둥지가 있고 암컷인 까투리가 알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까투리를 직접 본 일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요즘 기온이 오르면서 활짝 꽃이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 향이 아파트 창문으로 스며 들어와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게 한다.

거기다 창문 사이로 아침을 깨우는 꿩의 힘찬 홰치는 소리가 희망찬 아침을 열어준다.

꿩의 보금자리이던 큰 숲은 거의 사라지고 초고층의 아파트 공사를 하는 중장비 소리로 요란하고 시끄럽지만, 장끼는 고맙게도 이 작은 숲을 지켜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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