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 리어왕 되는 이순재 "아마도 마지막 리어왕"
세계 최고령으로 ‘리어왕’을 연기하는 배우가 한국에서 나온다. 다음달 1일 개막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리어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이순재(88) 이야기다. 공연제작사는 폐막한 뒤 기네스북에 정식 등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기원전 8세기 고대 브리튼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비극 가운데서도 규모나 비극성 면에서 가장 묵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팔순이 넘은 리어왕은 자기에게 아부를 하는 첫째딸과 둘째딸에게 모든 권력을 넘기지만 두 딸에게 배신당해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이순재는 이번 공연에서 리어 역에 단독으로 캐스팅됐다. 그는 2년 전에도 같은 작품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올려 23회 전회차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순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더 알찬 무대를 만들어 돌아왔다”며 “아마 이번 무대가 내 마지막 ‘리어왕’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전은 매번 공연할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며 “경험이 쌓일수록 작품 안에 숨어 있는 문학성과 철학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젊었을 땐 ‘햄릿’이 하고 싶었고, 중년일 땐 ‘오셀로’나 ‘맥베스’를 하고 싶었는데 주인공을 한번도 못했다”며 “이 나이가 돼서 드디어 나이에 맞는 ‘리어왕’을 맡게 됐다”고 웃었다.
'세계 최고령' 리어왕 되는 이순재 "아마도 마지막 리어왕"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최대한 그대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원전 8세기 고대를 재현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 등을 신경썼다. 대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만큼 고대의 전투 장면 등을 규모감 있게 구현할 계획이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중 하나는 대사. 길이가 길고 시적인 대사가 주를 이루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성상 관객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번역투나 익숙하지 않은 어휘는 적극적으로 수정했다. 예컨대 ‘차꼬’라는 옛 단어를 ‘족쇄’라고 바꾸는 식이다. 지난 몇달간 국내에서 출간된 ‘리어왕’ 번역본을 거의 모두 참고해 대본을 보완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의 예술감독까지 맡은 이순재는 “관객이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적절한 단어를 찾아 고쳤지만 셰익스피어의 대사의 ‘오리지널리티’는 그대로 살리려고 했다”며 “아마도 국내에서 원작을 가장 충실히 구현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어왕’의 줄거리만 보면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비로소 느끼는 힘든 자에 대한 연민과, 대사 속에 담긴 문학성과 철학성 등을 살펴보면 현대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 있는 현대성을 꺼내서 충분히 표현하고 관객들에게 동의를 얻는 게 우리 배우들이 할 과제 아닐까요.”

공연은 6월 1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에서.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