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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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서효인의 탐나는 책
김지호 지음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한겨레출판, 2023)
김지호 지음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한겨레출판, 2023)
아이야, 네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채 태어난 것을 알고 며칠은 슬펐다. 그 며칠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계속 행복하다. 너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얼까. 너는 “네” “아니” “싫어” “좋아” 같은 말은 곧잘 한다. 그러나 “오늘 날씨를 보니 곧 여름이 올 것 같아요”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했는데 즐거웠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같은 말은 한 적이 없다. 아마 아직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기 힘겨워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할 수 있을까? 너를 가르치는 학교와 센터의 선생님들은 ‘그렇다’고 한다.
못난 부모일수록 갈급한 성미를 숨기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으으, 아아,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눈동자와 손짓으로 언어를 대신해 의사표현을 하는 너를 보고 나는 대체 언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우리에게 언어라는 것이 원래부터 없었다면, 말이 없어도 서로의 생각과 감각을 수월히 알아듣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말이 잘 통할 텐데. 아니, 말이라는 게 없으니 그저 존재와 존재로서 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아이야, 인간은 대체로 말이라는 걸 하며 살아가고, 그 말을 잘 못하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장애인으로 분류된단다. 너는 장애아동이고, 발달장애이며, 다운증후군이다.
언어치료사 김지호 선생님이 쓴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읽었다. 선생님은 너와 같이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일을 한단다. 자폐 스펙트럼와 뇌병변 장애, 청각 장애와 다운증후군을 포함해 언어적 문제를 겪는 이유는 무척 많더구나. 그 아이들의 사는 집의 환경도, 부모님의 성격도, 치료에 따라 보이는 차도도 모두 달랐다.
그래, 너희는 모두 다른 아이들인데, 모두 제각각 존재하는 아이들인데, 이 사회는 너희들을 애써 지우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숨어 있다고 하여 너희의 존재가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는 가정방문 치료를 주로 했던 작가의 경험에 따라 자연스럽게 장애아동의 집과 부모, 형제가 등장한다. 그들의 현관이, 아이의 방이, 부모의 표정과 태도가 묘사되기도 한다. 그들 모두 평범하고도 굳건한 가정이어서 그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들은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김지호 선생님은 그러한 집에 조용하고 다정히 스며들어 아이들을 살폈다. 많은 아이가 치료의 과정에서 조금씩이라도 언어를 더 드러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역시 모두 다른 것이었다. 비장애인의 인생이 모두 다르듯, 장애인의 인생도 모두 다르다. 언어가 숨어 있다면, 그 다름의 결 또한 숨어 있는 언어만큼 더 섬세해질 것이었다.
아이야, 이 편지는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의 꼭지마다 김지호 선생님이 치료의 대상이었던 아이에게 남긴 편지의 형식을 따라 해 본 것이다. 스물다섯 꼭지가 있었으니 편지도 스물다섯 통이겠다. 나는 스물다섯 번을 웃고 스물다섯 번을 울었다. 그 웃음과 울음에는 별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잠시 숨어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이야, 너는 지금 깊이 잠들었다. 내일 깨어나면 어제의 언어보다 조금은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까?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김지호 선생님은 책의 첫머리에 “이 책에 아이들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나는 이 귀한 책을 읽고도 너에게 듣고 싶은 말만 생각해버렸다.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생각한다. 내일 깨어나면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질문을 바꾸니 비로소 숨어 있는 언어가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거기에 너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두근거린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로, 더 가까이 가봐야겠다.
못난 부모일수록 갈급한 성미를 숨기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으으, 아아,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눈동자와 손짓으로 언어를 대신해 의사표현을 하는 너를 보고 나는 대체 언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우리에게 언어라는 것이 원래부터 없었다면, 말이 없어도 서로의 생각과 감각을 수월히 알아듣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말이 잘 통할 텐데. 아니, 말이라는 게 없으니 그저 존재와 존재로서 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아이야, 인간은 대체로 말이라는 걸 하며 살아가고, 그 말을 잘 못하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장애인으로 분류된단다. 너는 장애아동이고, 발달장애이며, 다운증후군이다.
언어치료사 김지호 선생님이 쓴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읽었다. 선생님은 너와 같이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일을 한단다. 자폐 스펙트럼와 뇌병변 장애, 청각 장애와 다운증후군을 포함해 언어적 문제를 겪는 이유는 무척 많더구나. 그 아이들의 사는 집의 환경도, 부모님의 성격도, 치료에 따라 보이는 차도도 모두 달랐다.
그래, 너희는 모두 다른 아이들인데, 모두 제각각 존재하는 아이들인데, 이 사회는 너희들을 애써 지우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숨어 있다고 하여 너희의 존재가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는 가정방문 치료를 주로 했던 작가의 경험에 따라 자연스럽게 장애아동의 집과 부모, 형제가 등장한다. 그들의 현관이, 아이의 방이, 부모의 표정과 태도가 묘사되기도 한다. 그들 모두 평범하고도 굳건한 가정이어서 그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들은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김지호 선생님은 그러한 집에 조용하고 다정히 스며들어 아이들을 살폈다. 많은 아이가 치료의 과정에서 조금씩이라도 언어를 더 드러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역시 모두 다른 것이었다. 비장애인의 인생이 모두 다르듯, 장애인의 인생도 모두 다르다. 언어가 숨어 있다면, 그 다름의 결 또한 숨어 있는 언어만큼 더 섬세해질 것이었다.
아이야, 이 편지는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의 꼭지마다 김지호 선생님이 치료의 대상이었던 아이에게 남긴 편지의 형식을 따라 해 본 것이다. 스물다섯 꼭지가 있었으니 편지도 스물다섯 통이겠다. 나는 스물다섯 번을 웃고 스물다섯 번을 울었다. 그 웃음과 울음에는 별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잠시 숨어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이야, 너는 지금 깊이 잠들었다. 내일 깨어나면 어제의 언어보다 조금은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까?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김지호 선생님은 책의 첫머리에 “이 책에 아이들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나는 이 귀한 책을 읽고도 너에게 듣고 싶은 말만 생각해버렸다.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생각한다. 내일 깨어나면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질문을 바꾸니 비로소 숨어 있는 언어가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거기에 너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두근거린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로, 더 가까이 가봐야겠다.